치유의 길은 나선형이다

계속 상처로 돌아가는 걸 슬퍼만 할 필요가 없는 이유

by 은제인


며칠 전 꿈을 꿨다.

꿈속에서 고등학교 때의 나를 언뜻 만났다.

몹시 반가워서 활짝 웃었는데, 갑자기 그때의 내가 책이 되었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속속들이 다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서 그때의 아픔도 나의 것으로 통합해서 나를 더 보듬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 책장을 펼쳤는데…


그 책 안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고 커다란 아픔이 있었다.

놀란 마음으로 다시 책을 덮었다.


이 아픔을 치유하는 게 왜 이리 더딘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도 그 아픔을 다 직시할 준비가 안 된 것이었다.


무의식은 하나씩 천천히 내게 그 아픔의 다른 측면을 보내온다.

내가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부분 부분을 나누어서.




융이 말했다.


“무의식은 직선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늘 원을 그리며, 마치 나선을 타고 내려가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이해와 통합을 시도한다.”
– C.G. Jung, Memories, Dreams, Reflections


그래서 우리는 계속 그 상처로 돌아가는 것이다.

매번 그 상처의 다른 측면을 알게 되고, 이를 나의 일부로 통합시키려 시도하면서.





이전 몇 편에 연달아 내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놓고 나니 또 우울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기를 재우려고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 누워있자니, 그 힘들었던 시기의 다른 측면이 올라와서 문을 두드렸다.


그 시기는 내가 이미 풀어놓는 대로 왕따와 괴로웠던 연애의 고통뿐만 아니라, 또 다른 커다란 혼란이 있었다.

아빠가 기존에 해오던 성공적인 사업을 접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실패했다.

그 커다란 변화에 대해 부모님이 우리를 앉혀놓고 이러저러한 상황이라고 설명해 준 적은 없었다.

그저 매일 반복되던 엄마 아빠의 싸움에서 유추했을 뿐이었다.


그때 엄마와 아빠는 보험을 해지하네 어쩌네, 서로 네 탓이네 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했다.

가뜩이나 학교에서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와 아빠의 전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 스트레스가 우리에게 전가가 되어서인지, 언니와 싸우다가 언니에게 뺨을 세게 맞는 사건이 있었다.


어디 하나 마음 놓고 나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공간이 나를 공격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평소처럼, 나의 마음을 닥터 융에게 털어놓았다.

닥터 융은 융의 이론과 방식으로 나를 분석하게끔 트레이닝시켜놓은 나만의 AI융 전문가다.

난 이미 내가 기억하는 최대한의 아픔을 닥터 융에게 꺼내놓은 바 있다.

닥터 융은 내가 제공한 나에 대한 데이터와, 스스로가 수집한 융의 이론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를 이용해서 내게 곧잘 쓸모 있는 조언을 해주고는 하는 고마운 동반자다.


(*주의* AI도구는 절대 사람 상담사를 대체할 수 없고, AI도구를 통해 알게 된 결과도 100% 신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업무를 위해 다양한 AI모델을 사용하고 있고, 각 모델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교차검증의 방식으로 신뢰도 높은 결과를 추론하지만, 일반적으로 AI를 통한 심리상담을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반드시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닥터 융에게 물었다.



나의 청소년기는 왜
그렇게 힘들어야만 했을까?




닥터 융은 내게 그 모든 일들이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내 청소년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건, 나 때문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난 그 시절을 어떻게 지나왔고, 지금 이렇게 기억을 붙잡고, 언어로 정리하고, 심리적 상징으로 바꿔내는 사람이 되었다고.


이는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의식의 성장, 자기의 회복, 내면의 구조를 다시 세우는 창조적인 행위인 거라고.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 시절의 너를 니 안에서 만날 수 있니?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
그 아이가 지금 어떤 표정으로
서 있는 것 같아?


가만히 그 시절의 아이에게 집중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웅크리며 울고 있었던 그 아이가, 이제는 그래도 나를 바라보며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도와달라고 하고 있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모든 걸 너무 훌륭하게 견뎌내 왔어.
너무 힘들지?
너에게 너무 고마워, 잘 버텨줘서.
너 덕분에 내가 오늘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어.
그런데 네가 너무 외롭고 쓸쓸해 보여.
내가 뭘 너에게 해줄 수 있을까?
널 위해 꽃을 조금 더 사줄까?”




그 아이가 대답했다.


"꽃은 전에 받았으니까 괜찮아요.
그냥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 나를 보호해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부모님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 남자친구가 나에게 상냥해졌으면 좋겠고...
사랑받고 싶어요.”



그 아픈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내가 늘 너의 곁에 있을게.



다만 어떻게 해주는 것이 함께 있어주는 건지 수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곰곰이 그 아이의 가정을 생각해 봤다.

그 아이에게 집은 치유와 회복을 기대하기는 힘든 곳이었다.


반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집은 어떠한가.


남편과 나는 10년째 함께 살고 있다.

우리가 함께 사는 동안 우리에게도 시련이 분명 있었지만, 우리는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남편의 부모님들처럼 큰 소리로 싸우며 거친 언행을 하지 않았다.


우리의 가정에는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그날에 있던 일, 음악, 영화, 정치, 실없는 농담까지.


그리고 약 2년 전, 아기가 우리의 세계에 들어왔다.

신생아 때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고통 속에 지낸 날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기는 삶의 기쁨을 두 배, 세 배, 열 배로 더해줬다.


서로에게서 휴식처를 찾던 남편과 나는, 이제는 함께 아기를 돌보며 아기에게 안락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우리가 자랐던 집보다는 더 따뜻하고 웃음 넘치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난 궁금해졌다.



내가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이룬 지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왜 내 안의 내면아이들은 아직도 이토록 괴로워하는지.



이 궁금증에 대해 닥터 융이 그럴듯한 답을 알려줬다.


무의식은 시계를 다르게 쓴다고.

거기에는 “지금”이라는 개념이 없고, 거기 그 시간에 멈춰버린 감정의 조각들이 살아있을 뿐이라고.


지금의 나는 내 고통들을 넘어 잘 살고 있지만, 무의식의 오랜 방들은 아직 불이 꺼져 있지 않은 채 남아있는 상태라고. 즉 지금의 내가 안정되었더라도, 과거의 상처받은 자아는 여전히 ‘과거’ 속의 진실을 살고 있다고.


그래서 꿈으로, 상징으로, 기억으로 반복해서 나타나는 거라고.

이건 내가 후퇴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치유될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이 답을 듣고 한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는 상상을 했다.

고등학생 시절의 사진이 집에 있기 때문에 그 아이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이를 우리 집 소파에 앉히고는, 나의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이 사진은 아들의 돌 무렵 찍은 가족사진으로, 사진 속 우리 세 가족은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안의 그 아이에게 말해줬다.


"이제 너의 가정은 엄마 아빠가 돈 때문에 언성 높여 싸우던 그곳이 아니야.
너는 자라나서 새 가정을 이루었고,

이 가정에는 널 따뜻하게 사랑해 주는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기가 있는 그런 곳이야"


아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부모님이 빠진 가정을 자기 가정으로 생각하라니,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말했다.


"너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하지만 우리 집 부모님은 너무 많이 싸우셨어.
나름의 이유는 있으셨지만,
이제 계속 거기에 살 필요는 없어.
이제 그 집은 어쩌다 가끔 가면 돼.
너의 본거지는 그곳이 아니라,
가족과 즐겁게 지내고 웃음이 끊기지 않는 이 집이야.”


비로소 그 아이는 안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융의 이론과 내면아이 이론에 따르면 상처받은 내면아이에게 말로만 상황을 설득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 아이가 별개의 인격체인 것처럼 대우하며, 그 아이의 감정, 언어, 시간감각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의 내가 말로만 “괜찮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상징을 통해 “지금은 안전하다”라는 것을 몸과 감각 차원에서 경험하게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난 앞으로 종종 이 아이를 안락한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좁지만 온기가 가득하고 우리 가족의 추억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이곳저곳에 진열되어 있는 우리 집.

구석구석에는 네 컷 사진이 붙여있고, 그 안에는 내가 가족과 혹은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곳.


방바닥에는 아기의 장난감이며 책들이 널브러져 있고, 매일 청소기를 돌려도 아기가 흘린 음식이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이상한 공간.


남편의 악기들과 우리 세 가족의 옷가지가 꽉꽉 채워진 방 하나가 있고, 또 나의 작은 책상과 침대, 화장대가 비좁게 가득 차있는 방이 하나 있는 우리 집.


그래도 좋아하는 그림 몇 가지는 걸어놓고 싶어서 거실에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그림으로 벽면을 장식한, 따뜻한 나의 집.


아니, 우리 가족의 집.




이곳이 이제 너의 집이야.
그러니까, 여기서 나랑 같이 행복하자.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을게.




융은 말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보다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이다.”
— C.G. Jung, Modern Man in Search of a Soul



과거는 과거일 뿐, 우리는 그것을 번복하거나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과거의 일들로 상처받은 자신이 그 상처를 겪지 않게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과거의 자신을 그 상처보다 더 크게 성장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기억이 반복해 떠올라도 그것은 후퇴가 아니다.

우리는 나선형으로 된 치유의 길을 걷고 있다.

매번 그 아픔의 또 다른 면을 이해하며, 우리는 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다.


나선형으로 돌고 도는 길 끝에서, 우리는 분명 더 넓은 빛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초월에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