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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Oct 29. 2021

서랍 한 편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

우리가 사랑을 하긴 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린 친구 사이였어도 친해질 수 없는 사이였을 거야.

설렘 일도 없는 시작은 뻔했지.


설렘이 없으니 만남도 처리해야 하는 숙제가 되어버리더라.

처음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

나중엔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아까워 널 만나지 않으면 뭘 했을까 생각하더라.


만나도 아무런 이야기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들을 어떻게든 주워 담으려고 노력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노력이 너무나 아깝다.

답답한 마음에 짜증도 내고 화도 내봤지만 무표정한 너의 표정에 화낼 힘도 없더라.


덕분에 난 화가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지

권태라면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애초에 사랑이 없는데 권태가 올 일이 있나.

우리가 끝을 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을 때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관심을 가진 날 봤던 눈을 봤어.


우리가 헤어지던 날,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끝까지 나를 나쁜 사람을 만드는구나

넌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


핸드폰에서 지워버리면 그만이지만

난 서랍 한편에 끝내 버리지 못한 사진 한 장 남겨두는 미련한 짓을 하겠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지만 마음속에는 억울함이 한가득이다.

그때 왜 빨리 내치지 못했을까?

미련하게 나를 돌보지 못했을까?

퇴근을 기다리는 강아지 마냥 기다렸을까?


서로 바라보는 게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

자존심 세우지 말고 그냥 먼저 헤어지자고 이야기할걸

오늘도 미련하게 서랍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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