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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Oct 20. 2021

로즈메리

널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3학년 여름이었지

학교에서 창틀에 둘 꽃을 가져오라고 숙제를 내줬는데

어떤 건지 정해주진 않았어.


꽃집에 가서 어떤 걸 고르면 좋을까 고민하다

한번 만져 봤을 뿐인데 좋은 향이 오래도록 기억 남아

너를 골랐지


알록달록 색깔이 있는 꽃들 사이에

비교적 눈에 띄지 않았지만 향만큼은 너를 이길 꽃들이 없더라

쉬는 시간마다 몇 번을 만지고 갔는지 몰라


방학식날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널 깜빡했지

개학하고 나서 비쩍 말라있는 널 보았어

그 뒤로는 어디로 어디로 갔는지 기억나지 않더라


널 두 번째로 본건 갓 스무 살이 되고 나서였어

엄마 따라 화훼 단지에 갔는데 어디서 익숙한 향이 나더라

눈을 돌렸는데 바로 네가 있지 뭐야


집에 데려와 널 엄청 아꼈지

겉 흙이 마르면 물을 흠뻑 주고, 통풍이 잘 되고,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곳에 항상 두었지

단 한 번의 실수였어.


겨울에 햇빛도 제대로 못 보고 집에만 있어서 

시들시들해진 이파리를 보고 학교 가기 전 계단에 널 두고 왔지

다음날 아침 밖에서 널 마주했을 때 거뭇거뭇 한 널 보고 깜짝 놀랐어


며칠을 집에 두어도 색이 돌아오지 않다가

앙상하게 가지밖에 남지 않은 모습을 보고

다음부터 식물을 기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달콤한 향을 내며 나에게 인사하더라

자세히 보니 보라색 꽃도 피었더라.

난 네가 꽃을 피우는 식물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좋은 주인을 만나 꽂고 피우고

바로 옆에 가지치기 한 작은 로즈메리도 있는 걸 보니

사랑 듬뿍 받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어.


지금은 삶에 여유가 없어서 널 데려올 수 없지만

나중에 그루터기에 앉을 나이가 되면 남는 게 시간이니

그때 다시 만나도록 하자.







한 번쯤은 떠나보고 싶었어 E-book 서평단 모집 중입니다. 

관심 있는 분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journeywander/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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