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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Oct 31. 2021

혼자라서 참 다행이야

혼술 하고 싶은 밤

나이가 들수록 혼자가 편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솔직하고 고민을 털어 둔 날

나 없는 술자리에서 내 이야기가 안주거리가 되어버리고


위로받고 싶어 전화하면

감정 쓰레기 통이 되어 내 고민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남의 고민을 머리 싸매고 걱정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만나는 사람보다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이미 끊어진 관계를 어떻게든 붙여보려고 혼자서 안간힘을 쓰고

괜히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나도 모르게 미안함이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칠 대로 지쳐서 집에 도착하면

불 꺼진 방에 혼자 남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데 이런 삶이 적응되어

소리 제대로 내보지 못하고 설움을 흘려보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모난 곳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어디에 두어도 찾지 않아도 되는

잃어버리면 다시 사도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지.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은 동네 편의점.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해 폐기 처분될 것 같은 도시락과

만원에 다섯 캔 하는 맥주


혼술 하며 핸드폰 세상 속을 보고 있는 게

유일하게 상처를 덜 받고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나오라는 메시지에 반가움도 잠시

이번에 문 밖을 나서면 얼마나 더 비교되고

상처 받을 일들이 생길지 걱정돼 다음을 기약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외로움 때문인지 슬픔이 주체가 안 되는 혼술 하는 밤

난 왜 이럴까 자책하며

드디어 눈치 보지 않고 소리 내어 설움을 토해낸 날


그래도 혼자라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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