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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Aug 30. 2020


Ep 23 삼겹살 & 소주

생각보다 저렴한 소고기 가격 덕분에 이틀에 한 번꼴로  스테이크를 먹었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못 먹었다면 호주에서는 물려서 못 먹을 정도였다.  스테이크를 굽는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핏기 있는 고기가 어색해서 몇 번 조리하다 보면 어느새 돌덩이처럼 딱딱한 스테이크를 먹었다. 씹다 보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먹지만 턱이 나갈 것 같아 버린 적이 몇 번 있었다.  같이 살던 분들이 스테이크 조리 법을 몇 번 알려주었지만 내가 하면 왜 이렇게 못 미더운지 모르겠다. 


이럴 때마다 삼겹살& 소주가 생각났다.  한국에서는 퇴근 후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러 고깃집으로 향했는데 여기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콜스, 울월스에서도 삼겹살 부위를 판매하긴 하지만 손질이 잘 안 돼있고, 잡내가 심해서 구워 먹을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 호주 친구에게  한국식 삼겹살 숯불 구이가 그립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삼겹살부터 먹을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자기도 자주 먹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비슷한 음식이 있는 줄 알았는데 대화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숯불 삼겹살이었다.


' 어디서?' 


당연히 호주였기에 한국식 삼겹살 구이 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이래서 정보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결국  백인 친구에게 같이 가자는 간곡한 부탁을 하여 같이 삼겹살 집에 가기로 했다. 


서던 크로스 역에서 20분 정도 걸었을까? 서서히 외진 곳으로 가는 친구를 보며  장기라도 팔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도착했다.  가게 근처를 둘러보니 어디서 많이 본 곳 같더니  초반에 한국 친구들과 왔던 빅토리아 마켓 바로 옆이었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메뉴판 볼 것도 없이 삼겹살을 주문했다. 

"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불 들어가니 조심하세요 " 

오랜만에 맡아보는 숯불의 향, 고기가 익어가는지 내 얼굴이 익어가는지 모르는 열기, 하루 고생했다며 다음날을 위해 소주잔을 기울이는 소리,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삼겹살, 그리고 양파절임과 같이 먹는 삼겹살의 맛.

삼겹살로 인해 오감이 즐거워지고 있었다. 


이민자의 나라인 만큼 호주에 오면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한껏 기대에 부풀었었다. 하지만 정작 호주에 와서 가장 그리워지는 것은 한식이었다. 특별히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니었음에 불구하고도 한식을 찾게 되는데 해외여행을 하면서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여행 내내 불편했다는 여행 후기가 

격하게 공감 갔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나에게 호주에 삼겹살 집이 있는 것을 알려준 친구에게 그렇게 궁금해하던 한국 문화를 알려주었다. 

고깃집에 올 때 두 손 걷어붙이고 본인이 고기를 굽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박수와 함께 중간중간 쌈을 싸주어야 하고 고기의 흐름이 끊기면  잘 쌓아온 인연도 끊길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메뉴판을 붙잡고 목살, 항정살과 함께 물냉면을 추가로 주문했다. 

그리고  사심 없이 사줄 수 있는 건 돼지고기뿐, 혹시라도 소고기를 사주면 흑심이라는 것까지 알려주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이 친구가 한국 문화를 더 공부하게 되면 알게 되겠지.


이렇게 소소한 행복에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 



 

정신없이 먹다보니 제일 마지막으로 매장 문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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