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이퍼 Sep 17. 2020

Ep41. 어쩔 수 없는 한국인

가끔 미치도록 한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멜버른에도 한인 식당이 있지만 메뉴가 제한적이고 외국인 입맛에 맞춰서 조리를 하다 보니 대부분 간이 살짝 약했다.

그래도 김치찌개, 된장찌개, 설렁탕, 미역국 등 조리하기 쉬운 국들은 레트르토 식품으로 구매해서 먹을 수 있지만 간장게장, 양념게장부터 생각나면 답도 없다.  구매할 수도 없고 어디서 살 수도 없어서 사진으로 대리 만족하는 방법밖에 없다. 


한동안 인스타그램을 자제했다. 무슨 일인지 친구들이 자주 가던 막창집 사진을 자주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사진을 보면 어떤 주문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항상 가면 주문하는 막창, 대창 세트였다. 막창 위에 부추를 사정없이 올려두고 대창의 기름이 부추에 스며들면 그때 같이 싸 먹으면 된다.  고소하면서 씹는 질감이 예술이다. 어느 정도 배가 차면 볶음밥을 주문해 남은 대창, 막창과 먹으면 마무리가 된다. 


' 이럴 때면 워킹홀리데이 끝나기 전에 한국으로 귀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 먹을 수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먹고 싶은데 대창, 막창, 곱창을 구할 수가 없어서 만들어먹을 수도 없다. 

한 번은 아시안 마트에서 냉동야채곱창을 판매하길래 고민 없이 두 개를 사서 집에서 먹었는데 곱창에서 화장품 맛이 나는 것 같아서 바로 버렸다.  한번 냉동식품에 농락당한 이후로는 절대로 냉동식품을 사 먹지 않는다. 



한국에 있을 때 주로 스테이크, 파스타 등 서양식 요리를 주로 먹어서 딱히 호주에 가도 음식으로 인한 문제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호주에 와보니 한국보다 한식을 더 챙겨 먹는 것 같다. 

자발적 집돌이 일 때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강제적 집돌이가 되면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언제든지 한식을 먹을 수 있었고 중간중간 외식을 했던 것이지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서 타지에서 한식이 그리워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안 또한 한식이 그리워졌나 보다. 오랜만에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한식이 당긴다고 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식당에 들어가 어떤 메뉴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부대찌개가 있지 않은가?

주로 햄이 들어가는 찌개이다 보니 실패할 확률도 거의 없고 호주에서 먹어본 적이 없어서 오랜만에 부대찌개가 당겼다. 


평소에 메뉴를 고르면 상대방에게 어떤 메뉴를 먹을지 물어보는데 오늘은 그런 거 없다. 부대찌개 

부찌! 부찌!

다행히 한식이면 괜찮다는 이안의 말에 망설임 없이 부대찌개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보는 불판에 육수가 부어지는 것을 보니 설렌다. 이렇게 설렐 수가 없어! 


기다리지 못하고 햄 몇 개 주어먹었는데 역시 부대찌개는 햄이 생명인 것 같다. 밥이랑 같이 먹으니까 금세 부대찌개가 사라졌다. 그래도 이안 덕분에 부대찌개라도 먹어서 당분간 한식 생각은 조금덜 날 것 같다.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인가 보다. 한식 없이는 못 살 것 같다..

한국에 가면 주는 대로 불만 불평하지 말고 잘 먹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Ep40. 호주 운전면허증 발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