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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Jul 27. 2022

주가 없는 주식학 #15 조선&기계

조선: 조선의 아침은 다시 밝을 수 있을까.

#현대중공업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대한민국에서 삼성 이병철 회장과 함께 기업가정신의 씨앗을 심은 현대 정주영 회장은 개척가였다. 그가 남긴 여러가지 명언 중 '이봐, 해봤어?'라는 말에 담긴 정신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귀감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정주영 회장이 영국의 선박 컨설턴트 기업 A&P애플도어에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우리는 500년 전에 배를 만든 나라다'라며 설득한 일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가진 국가의 후손들이 '조선'이라는 산업 패권을 쥐게 되었다. 저번에는 하늘로 갔다면 오늘은 바다로 가서 조선 산업의 핵심 이슈와 미래 전망을 살펴보자.



‘조선’이라 하면 배를 만드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비즈니스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조선사는 물리적으로 배를 제작하는 일 뿐만 아니라 설계하는 일부터 수리하는 일까지 담당한다. 배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비행기보다 거대한 운송수단으로, 사실상 ‘바다 위의 부동산’이다. 집을 무턱대고 사지 않는 것처럼 선주들은 필요에 따라 배 발주량을 조절한다. 따라서 조선업은 경기에 따라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대표적인 시클리컬 산업이다. 조선업 역시 팬데믹 시대에 급격히 위축됐다가 엔데믹 시대에 다시금 부활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로 2007년 슈퍼사이클이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까지 불고 있다.


선박의 종류는 탱커선, 가스선, 벌크선, 컨테이너선으로 구분된다. 국내 조선사의 주력 선박은 탱커선으로 전체 수주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가스선은 국내 조선사 빅3가 독차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동아시아 시장에 국한되어 있는 LNG 가스선은 향후 동남아시아의 인프라가 발전하고 친환경 압박을 받기 시작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선박은 몇 대를 팔더라도 마진을 크게 남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고부가가치선'이라고 하면 특정 선종이 아니라 높은 단가와 낮은 비용에 계약한 선박을 의미한다. 같은 선종을 여러 척 동시에 수주하면 설계 작업이 확연히 줄어들어 고부가가치 계약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음으로 조선업의 최근 이슈와 미래 전망을 살펴보자. 중국 조선사가 벌크선, 컨테이너선에서 발주량을 늘리고 있지만, 국내 조선사의 주력 선박이 아닐 뿐더러 납기 지연이 비일비재한 중국 조선사가 국제 시장에서 신뢰도를 잃은 상태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은 러시아를 고립시키기 위해 중동의 기름과 가스를 유럽으로 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LNG 가스선을 독과점하고 있는 국내 조선사 빅3가 주목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LNG 가스선 다음으로 미래 조선업을 이끌 연료로 수소와 암모니아가 떠오르고 있지만 LNG 연료도 1990년대 개발되었으나 최근에야 상용화된 점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한국조선해양은 통합 시장점유율 50%에 육박하는 세 자회사를 거느린 현대중공업그룹의 선박부문 중간지주회사로, 현대중공업 상장 이전에는 조선 대장주였지만 지금은 입지가 애매해졌다. 작년 코스피 시장에 재상장된 현대중공업은 명실상부 글로벌 1위 조선사로 자율주행 선박, 친환경 선박 등 다양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선두 자리를 굳히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은 중소형 선박의 최강자로 상대적으로 건조 공정이 짧기 때문에 대형 선박에 집중하는 다른 조선사에 비해 실적 개선 속도가 빠르고 재무건전성이 안전하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올해 6월 창사 이래 최대 프로젝트인 LNG 운반선 4척을 수주했으며 내년 상반기 IPO 작업을 앞두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1999년 대우그룹 파산 사태 이후 몇 차례의 유동성 위기 때마다 산업은행의 자금 수혈을 받으며 공기업에 가까운 지배구조를 갖게 되었다. 2019년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넘기는 빅딜을 준비했으나 EU(유럽연합)가 기업결합을 반대하면서 합병이 무산됐다. 다시 산업은행의 품으로 돌아온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6월 하청업체 파업에 시달렸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대우조선해양은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했다. 순조로운 수주 흐름에 찬물을 끼얹은 파업은 51일 만에 마무리되면서 LNG 가스선 추가 수주에도 성공했으나 방만 경영에 대한 퇴진론과 매각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15년부터 7년 동안 영업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자본잠식 위기를 맞는다. 작년 무상감자와 유상증자를 통해 고비는 넘겼지만, 흑자 전환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재무구조 개선은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LNG 가스선 수주 랠리 속에 삼성중공업은 올해 상반기에만 작년 총 발주량 이상 수주했고, 친환경 선박과 자율운항 선박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삼성중공업은 조선 빅3 중 해양플랜트 비중이 가장 높은데 고유가 시대에 해양플랜트 신규 발주가 늘었음을 감안하면 유가가 100 달러에 육박하는 지금은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해양플랜트에서 턴어라운드를 기대할 수도 있다.



조선 산업은 대한민국이 세계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산업이지만, 조선주 투자는 상당히 어렵고 실제로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조선 산업은 해외수출 의존성 높아 외부 변수의 영향을 심하게 받으므로 주요 상품과 환율 등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휴대폰이나 자동차처럼 B2C 비즈니스가 아니라 B2B 비즈니스이므로 고객사가 발주한 수주 잔고가 기업에 현금으로 쌓이기까지의 시차를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조선주 투자지만 조선업 공부만 제대로 하면 세계 경제는 물론이고 다른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게 확장할 것이다. 몰라서 못 하는 것과 알지만 안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기계: 등잔 밑이 어둡다.

#두산밥캣 #현대로템 #현대엘리베이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역사를 가진 재벌가는 현대그룹일 것이다. ‘현대판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은 말 그대로 공중분해가 됐고 현대엘리베이터만 남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 중공업의 대명사였던 두산그룹의 역사도 이에 못지않게 우여곡절이 많다. 하지만 창립자 박승직 회장의 ‘공동소유 및 공동경영’ 정신에 따라 박두병 회장의 아들 5형제가 차례대로 돌아가며 회장직을 맡으면서 두산그룹 역시 ‘형제의 난’을 겪고 무리한 경영을 하다가 그룹 파산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기계 산업에서 두산그룹과 현대그룹을 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대기업의 역사를 따라 기계 주식들을 하나씩 알아보자.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야구만 잘하는 두산'이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에만 하더라도 두산그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었다. 특유의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프로젝트로 몸집을 불린 두산그룹은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팠다.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는 당시 기업 M&A 최대 규모로 밥캣을 인수했으나 2008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고, 2009년 두산건설이 추진했던 '탄현 두산위브 더 제니스'는 국내 주택경기침체가 본격화하면서 그룹사 전체를 유동성 위기에 빠트렸다. 밥캣과 건설을 살리는 데에만 수조 원을 쏟아부은 두산그룹은 랜드마크 '두산타워'와 캐시카우 '두산인프라코어'까지 매각하며 유동성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밥캣은 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다리가 길고 꼬리가 짧은 고양이로, 이 동물을 본따 만든 '스키드 스티어 로더'라는 소형 장비를 밥캣이라고 부른다. 두산중공업의 대형 건설장비를 책임지던 두산인프라코어는 잉거솔랜드로의 밥캣 사업부를 인수해 소형 건설장비로 영역을 확장했다. 사업부 이름도 'Compact Equipment', 'Portable Power'인 만큼 두산밥캣 제품은 크기가 작고 휴대하기 편하다. 인수하자마다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두산밥캣은 미국 주택경기가 점차 되살아나면서 두산그룹의 새로운 효자가 되었다. 그리고 2022년 미국 경기침체 우려에 매출의 대부분을 북미 시장에서 거둬들이는 두산밥캣은 다시 긴장의 끈을 조이고 있다.


두산밥캣은 핵심 계열사로 자리잡은 반면 정작 두산인프라코어는 다른 계열사를 살리다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결국 2020년 현대중공업그룹에 8500억 원에 매각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를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기계는 에너지, 조선과 함께 그룹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자리잡는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기계부문에는 산업로봇을 제작하는 현대로보틱스와 전력관리에 최적화된 현대일렉트릭 외에 건설부품을 공급하는 현대제뉴인이 있다. 현대제뉴인을 중간지주회사로 뭉친 현대건설기계,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2025년까지 매출 10조 원, 세계 시장점유율 5%로 글로벌 Top5 건설기계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대제뉴인은 글로벌 Top5 도약의 핵심 기술로 '무인화'와 '자동화'를 제시했다. 작년 HDC현대산업개발의 부실사고와 올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줄어드는 노동력을 기술력으로 대체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현대제뉴인은 이미 실내 자율주행이 가능한 무인지게차를 개발해서 판매 중에 있고, 현대건설기계와 현대두산인프라코어도 무인 원격제어 솔루션과 자동 위험감지 솔루션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그룹은 정기선 사장 체제에서 'HD현대'라는 사명으로 새출발을 알렸다. 건설현장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로봇이 일을 하는 미래가 머지않았다.


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한 번은 승강기를 이용할 것이다. 전세계 엘리베이터 시장 규모는 2020년 762억3000만 달러에 달하며 고령화와 도시화로 2026년 1489억4000만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대한민국은 고층 빌딩이 많고 광역 전철망이 발달해 글로벌 승강기 업체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세계 3위 엘리베이터 시장이다. 국내 유일의 토종 기업인 한국엘리베이터(종목명: 한국엘리베이)가 독일의 티케이엘리베이터, 미국의 오티스엘리베이터에 맞서 40% 수준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신규 설치 만큼 사후 관리에도 공을 들이면서 내수를 넘어 해외 시장까지 영토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기계와 방산을 동시에 투자하고 싶다면 현대로템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로템의 2021년 기준 전체 매출액 가운데 '레일솔루션(철도)'이 58%, '디펜스솔루션(무기)'이 31%, '에코플랜트솔루션(인프라)'이 11%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모빌리티 혁신의 핵심인 교통망과 수소경제 전환의 핵심인 충전소를 깔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가 한국항공우주의 FA-50 경공격기, 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와 함께 현대로템의 K2 전차(블랙팬서)를 2024년까지 180대 가량(약 3조 원 규모) 구매한다는 소식이 돌면서 K-방산이 다시금 주목받았다.



기계 산업이라 하면 개인투자자들은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상에서 중장비 기계를 만져볼 일조차 없고 수주거래에 따라 실적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실체를 열어보면 세상의 발전과 함께 구조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은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을 기계에서 떠넘기고 새로운 기계는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여전히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기업을 분석을 꼼꼼하게 하고 명확한 투자포인트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 무언가를 고치기 위해 기계를 활용하는 것처럼 단조로운 포트폴리오에 역동적인 알파(추가수익률)가 필요하다면 기계주에 관심을 가져도 좋다.



<다음 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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