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디지털 노마드가 되려고.
퇴사를 2주 앞두고 자연스럽게 손이 간 책이 있었다. 브런치 정혜윤 작가의 <퇴사는 여행>. 나는 며칠 남지 않은 출퇴근 시간에 짬짬이 이 책을 읽었더랬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퇴사를 일 주일 앞두고 쓴 메모가 있어 그대로 첨부해 본다.
초반부터 저자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성향이나 생각하는 스타일이 그러했는데, 그러고 보니 스타트업을 다니다가 26살에 첫 퇴사를 했다는 것까지 똑같다. 코로나 사태만 아니었으면 나도 퇴사를 하고 혼자 여행을 떠났을 텐데. 오늘, 주말 출근한 회사에서 동료에게 이 책을 보여주자 표지의 일러스트마저 나를 닮았다고 했다. 꼭 저렇게 노란 티셔츠가 있지 않으냐고. 백팩에 이상한 걸 달고 다니는 것도, 팔목에 팔찌를 주렁주렁 찬 것까지 나랑 똑같다며 맞장구를 쳤다. 나도 독일의 한 조그만 마을에서 저렇게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에 놀러가곤 하던 때가 있었는데. 퇴사를 하고도 여행 한 번 떠나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 씁쓸하다.
남자친구에게 이 책을 보여주며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일 년씩이나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그가 물었다.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다가 금새 말을 바꿨다. 생각해보니 내 최장 여행 기록은 40일이 채 되지 않았다. 항상 마지막 날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잠시 혼자 생각해보고는 일을 하면서는 가능할 것 같다고 다시 대답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거나 취직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도 잠시 고민하더니 삼 개월씩 네 도시를 돌아다니면서는 일 년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보통 맡게 되는 프로젝트가 삼 개월 단위라고 했다. 나는 잠시 우리 둘이 디지털 노마드로 같이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했다.
- 9월 27일, 책의 절반을 읽다가 -
2~3년 전 크게 유행했던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 뭔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하려고 하는 게 '프리랜서'보다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서 누군가 "앞으로 뭐 할 거야?"라고 물어보면 여러 단어를 길게 써가며 주저리 주저리 말로 풀어 설명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나, 디지털 노마드가 되려고."
꼭 IT 관련 일을 하지 않더라도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릴 수도, 영상을 편집할 줄도 아니까. IT 기업이나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늘어날 거고, 어떤 일에 시간을 들이고 도전하는 만큼 그 역시 하나의 능력이 되어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로 또 늘어갈 것이다. 방법은 많으니까 그걸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인듯 하다.
저자는 가끔씩 어떤 직업이 우연처럼 찾아왔다고 했다. 자신도 몰랐던 가능성을 누군가 알아보고 제시해주기도 하고, 과거엔 피하고 싶던 일이 이제는 누가 못하게 막아도 억지로 할 만큼 좋아하는 일이 되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유명한 스티븐 잡스의 스탠포드 연설이 떠오른다.
저자도, 스티븐 잡스처럼 직접 겪어봤다. 어떤 결과를 기대하고 내린 결정보다 그 당시의 순간에 하고 싶어서 행동한 일이 미래에 좋은 일을 안겨준 경우 말이다. 그것이 바로 점들이 연결되는 순간이다. 나 역시 미래를 위해 현실을 살기보다는 내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곧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순간에 충실하고자 한다.
재미야말로 행운을 부르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내 재미를 쫓아 점을 찍다보면 그 점들의 연결이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줄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재미있는 일은 어떻게 찾는 걸까? 저자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방법"을 세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내 지난 경험들을 떠올려봤을 때, 꽤나 공감되는 내용이라 각각의 단계마다 내 나름의 코멘트를 달아 여러분께도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인생의 25퍼센트는 자신을 찾아내는 데 써라. 남은 75퍼센트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라." 팀 페리스
남을 알아가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신에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지,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내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런 것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하던 나의 모습이 막상 시간을 들여 확인해보니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궁금했던 세계 안에서 신나게 놀아보는 진짜 공부를 해봐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면 능력을 키워야 한다. 변화를 정말로 원한다면 직접 찾아보고 공부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머리로만 생각한다면 절대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작가는 '내공'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일하면 회사에서도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이든 배우는 기분으로 흡수하면 어떤 불운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더 현명하게 쓰는 방법은 훨씬 더 많으니 잘 판단하자.)
저자는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기회도 사람을 통해 찾아온다고 말한다. 내가 사람을 찾을 수도 있지만 내공을 쌓아 사람들이 나를 찾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물론 사람들이 나를 찾게 하려면 나를 보여주는 온라인 창구가 필요하다. 컨퍼런스 강연에 가거나 크고 작은 모임에 참가해 쌓은 내공을 어필할 수도 있다.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알고만 있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확실한 기회의 차이를 줄 것이다.
나를 갉아먹던 초조함은 결국 두려움이었다. 도전을 좋아한다고는 말했지만 스스로 설정해둔 안전지대 밖으로 잘 나가지 않기도 했다. 저자는 아래와 같은 말로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26살의 내가 느꼈던 초조함이 실은 두려움이었다는 걸 몇 년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되기를 가로막고 있는 게 두려움이라는 걸 깨닫자 행동하는 게 조금 더 쉬워졌다. 모험이 하고 싶은 거라면, 두려움을 극복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우리 밀레니얼&제트 세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인식이 되어버렸듯이, 퇴사는 끝이 아니고 과정이다. 불안해할 수는 있겠지만 오버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도 회사도 다니지 않는 환경에서의 나는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즐거운 방황의 시작점에 서서, 이 책을 읽은 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두려움에 대처하려면, 두려움이란 안전지대를 벗어날 때마다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불편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크리스틴 울머
1. 적극적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무엇이든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없다. 멋진 결과 뒤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행착오, 과정이 있다. p.207
2. 오래가고 잘 되는 회사는 기업 철학이 명확하고 윤리적이다. 진정성을 가진 브랜드는 소비자를 넘어선 팬들이 생기고, 그 관계가 모든 일에 있어 제일 큰 강점이 된다. p.289
3. 연봉과 복지 같은 단순히 외적인 조건보다도 회사의 철학이 무엇인지, 내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큼 성장할 수 있는지를 더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고객도 직원도 회사도 모두 영리해졌다. 우리는 '무엇을(what)'보다 '왜(why)'에 움직이게 된 것이다. p.308
4. 마케팅과 브랜딩을 공부하다보면 사람들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고,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점을 만드는 것은 결국 '이 브랜드가 얼마나 자기다운가'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브랜딩의 끝판왕 역시 브랜드의 본질과 직결되는 '자기다움'이다. 가장 자기다워지는 것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p.310
+) 저자는 '나다워지는 것'에 대해 말하며 세스 고딘의 말을 인용했는데, 해당 말이 나온 풀 스토리가 궁금해서 관련된 저자의 브런치 글을 가져왔다.
▼ <퇴사는 여행> 정혜윤 작가가 브런치에 올린 '세스 고딘' 관련 글
"이제껏 어떻게 모르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었다. 존재를 알게 되자마자 바로 버킷 리스트에 넣었다. 미국 서부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에서 1986년부터 매년 열리는 행사로 수만 명이 약 일주일 동안 한 데 모여 직접 예술적인 공동체를 만든다고 한다. 잘 모르는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아래 첨부한 글을 보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 버닝맨에 대한 간단한 포스팅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다녀와서도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은 느낌이다. 저자처럼 사람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으니까 영어 공부는 필수다.
▼ 버닝맨 공식 웹사이트
치앙마이는 여행지, 특히 '한 달 살기'로 유명하다고는 들었지만 디지털 노마드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인줄은 몰랐다. 찾아보니 2016년도 노마드리스트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노마드가 일하기 가장 좋은 도시로 태국 치앙마이와 방콕이 꼽혔다고 한다. 이 책이 쓰여질 시기도 그 비슷한 2016~2017년도라서, 저자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직접 들여다보고 싶어 방문했다고 했다.
2020년 최근 자료를 살펴보니 의외로 남미가 최상위에 올라있었다. 북미 지역의 디지털 노마드가 많아졌기 때문일까? 1위는 부에노스 아레이스(아르헨티나), 2위는 멕시코 시티(멕시코), 3위는 리스본(포르투갈)이었다. 하지만 역시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는 동남아시아다. 6위로 내려온 방콕(태국)은 코워킹 스페이스가 매우 잘 갖춰져 있다고 한다. 7위는 다낭(베트남), 9위에 푸켓(태국)이 있다. 물가도 저렴하고 남미에 비해 치안도 좋은 편이니 나도 짧게는 이 주에서 길게는 한 달 정도, 잠깐이나마 살아보고 싶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세계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이다. 유명 가수들이 무대에서 공연도 하지만, 길 거리에서 서커스, 코미디, 춤 등 다양한 예술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작가가 '마법 같은 장소'라고 하기에 궁금해서 서치를 해보다가 우연히 작가가 글래스톤베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쓴 글을 새로 발견했다.
▼ <퇴사는 여행> 정혜윤 작가가 쓴 '글래스톤베리'에 관한 기사
짧지 않은 글을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마음 맞는 친구랑 같이 가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내년에 티켓팅 도전해야지. 아, 그리고 영어 공부도 빨리...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배낭여행하는 할머니가 될 테니까, 죽기 전에 이 모든 곳을 가볼 수 있겠지? 언젠가 이 세 곳의 여행기를 연재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