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강 시집 - 첫 번째 ,
밤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잠이 들 때까지
나는 잠에 들지 못합니다
꽤 오래전부터 의사가 준 네 알의 약을 먹어야
깊은 잠에 들 수 있거든요
제가 어디가 아프냐고요
저는 그냥 좀 불안합니다
처음엔 금방 났겠거니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차도가 없습니다
의사에게 제 상태를 자세히 말해봅니다
의사의 큰 눈은 볼 때마다 나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그럴 땐 내가 의사를 만나러 가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말하지 않으면 제가 불안하거나 잠을 못 잔다는 걸 모릅니다
언제부턴가 그냥 잠자리를 좀 가리는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들키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건 흠도 되지 않는다는데 주변에 말할 용기는 안 납니다
아무도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보름 후에 또 보자고 합니다
나는 외상도 없는 환자라 언제 나을지 알 수가 없다는 불안이 엄습합니다
인간은 원래 불안한 존재니까 그 불안을 안고 살아가면 될까요
네 알의 약 중에는 수면을 도와주는 약이 있다고 합니다
11월의 첫 월요일
가을비가 내립니다
곁에 누가 없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곁에 누가 잠시 있었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분명합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저는 똑같습니다
차도가 없는데도 약을 먹고 이름도 안 떠오르는 사람 때문에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합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잠이 들 때까지
나는 잠에 들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