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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31. 2022

그냥 좀 불안합니다.

조원강 시집 - 첫 번째 ,

밤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잠이 들 때까지

나는 잠에 들지 못합니다

꽤 오래전부터 의사가 준 네 알의 약을 먹어야

깊은 잠에 들 수 있거든요

제가 어디가 아프냐고요

저는 그냥 좀 불안합니다

처음엔 금방 났겠거니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차도가 없습니다

의사에게 제 상태를 자세히 말해봅니다

의사의 큰 눈은 볼 때마다 나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그럴 땐 내가 의사를 만나러 가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말하지 않으면 제가 불안하거나 잠을 못 잔다는 걸 모릅니다

언제부턴가 그냥 잠자리를 좀 가리는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들키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건 흠도 되지 않는다는데 주변에 말할 용기는 안 납니다

아무도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보름 후에 또 보자고 합니다

나는 외상도 없는 환자라 언제 나을지 알 수가 없다는 불안이 엄습합니다

인간은 원래 불안한 존재니까 그 불안을 안고 살아가면 될까요

네 알의 약 중에는 수면을 도와주는 약이 있다고 합니다

11월의 첫 월요일

가을비가 내립니다

곁에 누가 없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곁에 누가 잠시 있었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분명합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저는 똑같습니다

차도가 없는데도 약을 먹고 이름도 안 떠오르는 사람 때문에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합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잠이 들 때까지

나는 잠에 들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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