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흐름에 기대지 않는다는 것..제주의 가을에서
바람이 세게 불어 머리칼이 흩날리던 날,
나는 낯선 섬의 바다 앞에 서 있었다.
누군가는 말했지. 계절을 기다려야 한다고.
꽃이 피는 계절, 단풍이 드는 계절,
눈이 내리는 계절을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마음을 전하라고.
하지만 나는 그냥 떠났다.
그 계절이 아직 오지 않아도.
빛이 스며드는 구름 사이,
혼자라는 존재는 더 또렷해졌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는 황혼녘,
고요한 수평선과 풍력발전기가 묘하게 어울린다.
그 어떤 소리보다 강한, 침묵의 파도.
차가운 바닥 위 낙엽들 사이,
조용히 자리 잡은 카메라 하나.
가을은 이미 깊숙히 와있고
나는 지나가는 가을을 찍고 있었다.
무언가를 담는다는 건,
그 장면을 먼저 사랑한다는 뜻이 아닐까.
걱정하지 마.
나는 네 손을 잡고 있으니까.
찬 바람이 불어도, 낯선 길이어도.
내가 찍은 이 장면은
어쩌면 나의 마음보다 더 따뜻하다.
움직임이 없는 듯 보이지만
늘 흐르고 있는 물.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삶도 그렇게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이란
날이 좋을 때만, 시간이 많을 때만,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만 떠나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는
기다릴수록 더 떠나기 어려워지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계절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도,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기로 했다.
사진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