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녀에게 배우다 (제주 검은 모래 해변에서)
먼저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밀려오는 자연의 힘을 고스란히 느껴보세요.
사진 속 너울진 바다에서 전해오는 그 강한 끌림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귀 기울이면 파도가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눈앞의 작은 물결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부드럽게 다가오는 파도를 기다려 보세요.
그러나 기다리는 파도가 오지 않는 순간,
잔잔한 물결만 일렁일 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죠.
일렁임의 고요함에
가벼운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그리고 우아하게 펼쳐진 수평선.
그 엄청난 조화 앞에서
마음속 깊은 평온이 피어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수평선의 만남을
시샘하고 싶어서
“바보야!”
철부지처럼 외치는 작은 소녀의 한마디.
그 당당하고 자유로운 모습은
오히려 자연의 일부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다가왔다가 멀어져 가는’
자연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 흐름에 익숙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자연과의 교감이 시작됩니다.
해변에 불어오는 가을바람 속에서
천천히 숨을 내쉬면,
온몸이 부드럽게 풀려갑니다.
이제 소녀는 자유롭게 춤을 춥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나는 이제 해변을 걸어갈 준비가 되었어요.”
조그마한 외침이지만, 전해지는 확신이 있습니다.
사진 속 소녀와 함께
땅과 바다 사이를 걸어가는 그 순간,
모든 것이 완성되는 듯합니다.
소녀는 떠나고
내게 남겨진 시간은
파도가 왔다가 수평선으로 돌아가는 만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