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새 학년 진급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이사 소식이 들려온다. 떠나는 자와 남은 자는 그 비율만큼이나 설레고 외롭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비학군지의 교육시설답게 한 학년에 두 학급뿐이다.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분교 같은 곳, 입학은 하더라도 교육에 뜻이 있는 부모는 아이가 고학년이 되기 전 기어이 이곳을 떠나고야 만다.
십 년간 서울에 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꼈다. 즐비한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에서도 쇼핑은커녕 외식조차 마음 놓고 하질 못했다. 폭넓은 문화와 놀이시설도 그림의 떡이었다. 무료 프로그램들은 인기가 많아 주말에는 예약이 치열하다. 대출금을 갚기 바쁜 맞벌이 부부는 우리가 서울에 살 자격이 있는 걸까 서로에게 자주 묻곤 했다.
애초에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서울에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와서 일자리를 찾다 보니 나도 서울에 직장을 얻었고, 어렵게 잡은 직장이 아까워서 지방으로 내려가지도 못한 채 서울에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 도움받을 곳 없이 오롯이 남편과 두 아이를 키우며 차라리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있는 먼 지방으로 내려갈까 수없이 고민했다.
바로 지척에 있어서 누릴 수 있는 것들도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쉽게 단념하건만, 이상하게도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앞서가진 못하더라도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불안과 욕심이 쉽게 스며든다. 더군다나 서울의 집값이 천정부지 솟아버린 바람에 가장 변화를 주기 어려운 주거환경에 대해, 떠나는 이웃들을 보며 슬며시 변화를 꾀했다. '맹모삼천지교'라는데 강남이나 목동까진 아니더라도 분교에서는 탈출시켜줘야 하지 않을까? 직장과, 교회와 가깝다는 이유로 이곳을 고집하는 게 맞는 것일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이겠지만.
한 엄마는 청약에 당첨되어 이 동네를 떠나기 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할 한마디를 남겼다.
'이 동네는 썩었다.'
내가 사는 곳은 교통은 좋지만 소규모 구축 아파트에 주변엔 낙후된 주택가와 골목길이 있는 곳이다. 이 동네는 썩은 동아줄처럼 우리의 안전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일까? 아이들이 받는 '교육의 질'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동네를 옮겨야 하는 것이 아닌지, 주변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가끔 답답하고 조급해졌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동네의 장단점만큼이나 중요한 건 나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는 걸.
공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어느 곳이나 동일할 것이고, 최상위 학군지가 아니라면 학생들의 학업 분위기는 비슷할 것이다. 결국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되고 선택지가 많은 곳이 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군지'일 텐데, 학원가의 활발한 형성보다도 육아에 도움받을 곳이 없는 우리 부부에겐 직주근접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퇴근이 늦어지는 만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도 칼퇴근 후 집에 와서 밥을 먹이고 씻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기에도 빠듯한데,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더 늦어진다면 정말 잠만 자고 나가는 지경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선 보낼 수 있는 학원이 많지도 않지만, 선택지가 많이 있다 해도, 나와 남편이 여섯 시까지 회사에 있는 동안 두 명의 자녀를 매달 '학원 뺑뺑이'로 돌릴 만큼 사교육비 감당이 가능한가 하면, 유감스럽게도 그렇지가 않다. 뭐든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자녀가 두 명이니 두 배가 되는 월 납입료를 벌써부터 늘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보내고 있는 종합 보습학원 규모의 방과후학교가 어차피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다.
종일 공부방 역할을 하는 이곳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지출로 보육과 교육을 '적당히' 감당해 주고 있다. 방학 때도 운영을 하고, 9시에 운영을 시작하는데도 9시 출근을 위해 늦어도 8시 15분까지는 아이들을 데려다줘야 하는 나의 사정을 고려해 주는 이곳에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다니는 동안 그 이상의 교육의 질을 바라진 않을 것이다. 다만 아이에 대해 그만큼의 부담을 스스로 짊어질 뿐이다.
뒤쳐진다는 느낌을 나는 잘 알고 있는 반면, 그것을 극복할 만한 의지가 내 아이에게 어느 만큼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교육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만큼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차이가 벌어진다고 하니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미리 한 발씩 떼어야 할 것만 같다. 아직은 내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 다만 아이의 걸음에 발맞추며 조급하지 않기로 한다.
끌고 가든 밀고가든 내가 끝까지 이끌거나 뒷받침을 할 수 없다면 어디서나 아이가 느낄 불안감은 동일할 것이다. 중요한 건 나의 불안이 아닌 아이의 불안이다. 그리고 아이의 안전기지는 어디까지나 부모가 일 순위다.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아이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낙후된 동네에서도 얼마든지 안전한 기지를 만들어줄 수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의지가 생기도록 북돋워주는 것. 무엇을 하고 싶을 때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만한 체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즉, 긍정적인 공부 정서를 비롯한 정서적 지지와 함께 영양적인 식단을 제공하고 운동을 병행하는 것, 어릴 때부터 편도체가 아닌 전두엽이 활성화될 수 있는 활동들을 장려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지만 근본적으로 좋은 환경이란 좋은 가정을 의미한다. 그것을 제외한다면 좋은 환경이 건강한 성장을 담보하진 못할 것이다. 식물마다 성장하기에 좋은 환경이 따로 있듯 사람마다 환경의 결핍이 있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인 성장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는 일은 아이에게 상실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모쪼록 지나간 관계를 아름답게 추억할 줄 알고, 오래된 관계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길. 이날까지 내 곁에 남을 사람은 남고 나는 내 삶을 살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오늘과 내일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만들어 갈 것이다. 좋은 가정적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리적 공간이 전부는 아니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것은 아이 스스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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