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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의 현숙과 내가 닮은 점

철벽녀가 바라본 그녀는

by 조이


아는 동생이 방송화면을 캡처해서 DM을 보내왔다. 현재 방영 중인 <나는 솔로>의 현숙과 내가 닮았다고 한다. 방송을 찾아보니 참하고 예쁜 분이라서 기분이 좋다. 교회에서 만났던 동생이라 그런지 보는 눈이 선하다. 내가 선한 모습만 보여준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엔 현숙이 나오는 부분만 보다가, 그녀가 좋아하는 영호를 보다가, 그가 좋아하는 순자를 보다가 그냥 다 보고 있다. 현숙에 감정이입하다 보니 오랜만에 나는 솔로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현숙과 나는 참한 외모(?)와 종교를 제외하고는 닮은 구석이 없다.


그녀는 웃으며 이성을 잘 받아주는 스타일인데 반해 나는 철벽녀에 가깝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내게 '남자보기를 돌같이 하라'며 단속을 시켰다. 남자는 조금만 잘해주거나 웃어주면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안다며, 쉽게 미소를 보이지 말라 했던 엄마의 말씀은 살면서 꽤 여러 번 증명되었다.


현숙이 솔로나라에서 의도치 않게 당면한 현실도 그러하다. 나는 현숙의 선한 의도와 친절이 좋지만, 그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상황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다. 내가 오랜 세월 철벽녀로 살아오면서 보유하게 된 스킬들을 전수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데 그게 가르쳐준다고 될까?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상대방의 마음을 감지하는 센서가 제대로 작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세술과는 다르다. 동물적 감각을 바탕으로 한 판단인데, 정도에 따라선 너무 앞서갈 수도 있다.


예컨대 상대방이 내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몇 퍼센트인지는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도 철벽을 쳐야 할까? 어떤 이유에서건 내가 상대방을 받아줄 마음이 없다면 그러는 게 좋다. 관계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고, 애매한 사이에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벽은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다. 그래서 매 순간 외롭다. 흔히들 눈이 높다 하지만 어떤 기준이라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명확하다 해도 그 기준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기준 없이 막연한 두려움에 철벽을 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방어적인 태도가 습관이 되어 누구라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철벽을 치지 않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상대방의 마음과 의도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내 마음의 흐름까지도 두고 볼 용기를 내는 일이다. 문을 열어두는 것은 닫아두는 것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마음은 여러 갈래로 흐를 수 없다. 어디로 흘려보낼지, 어느 곳에 길을 낼 것인지 결단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결국 어느 곳에 둑을 쌓을지 결단하는 것 또한 철벽을 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다만 둑을 쌓더라도 흘렀던 물이 마르기까진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흘렀던 마음, 주거나 받은 진심으로 인해 눈물이 흐를 수도 있는 것이다. 조용히 흐르게 두었던 길에 뒤늦게 강둑을 쌓는다고 해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상대방의 진심이 넘칠 수도 있는 것이다.


철벽을 치는 때와 방식, 강둑을 쌓는 때와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현숙에게서 사람에 대한 예의와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우유부단한 모습 혹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처럼 보였대도 말이다.


현숙은 철벽을 치지 않음으로써 넘쳤던 상대방의 진심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넘친 진심은 그녀의 눈에 고스란히 눈물로 차올랐다. 그녀의 눈물엔 나를 향한 상대방의 진심과, 다른 이를 향한 나의 진심이 섞여있을 것이다.


솔로나라까지 입성하기로 한 이상 현숙은 마음문을 활짝 열고 갔을 것이다. 저렇게 참하고 예쁘고 똑똑하기까지 한 여성이 여태껏 솔로라면,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철벽을 쳤을 것이다. 그동안 꽁꽁 싸맸던 마음, 애써 빗장을 풀고 나왔는데 이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속상할 만하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어쨌든 착한 아이들이 걸린다. 너 착하구나,라고 칭찬받아본 아이들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라면. 철벽을 치든지 둑을 쌓든지 그녀가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무너뜨리고 벗어나는 것 또한 전적으로 그녀의 몫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상대방의 마음만큼이나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그녀가 말한 순리만큼이나, 자신의 마음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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