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자리에서 정확히 90도를 틀어야 그녀가 보였다. 오늘 만나기로 한 여자가 아닌가 싶어 슬쩍 돌아봤던 게 다였다. 두 번 이상 힐끔거리는 건 영훈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 건 하수나 하는 거니까. 그런 영훈이 불현듯 고개를 홱 돌려서 쳐다본 것이다. 네 번째로 이곳에 들어왔던 여자를.
"....."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여자도 영훈을 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포착에 여자는 흠칫하는 것 같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의 뒤통수에는 센서가 달려있는 게 분명하다. 영훈은 괜한 자신감이 솟구쳤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하기로 했다. 아니, 사실은 이런 자세로 말을 걸 순 없었다. 젖은 빨래처럼 몸을 비튼 채로 무슨 말을 짜낸단 말인가. 게다가 네 번째 여자는 냉미녀에 가까웠다. 그래도 굳이 이상형을 말하자면 영훈은 강아지상보단 고양이상을 선호했다. 누군가 그냥 미녀를 선호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었지만.
영훈은 스트레칭을 하는 척하며 반대로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선 천천히 일어났다. 짧은 인생이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눈이 마주쳤을 때 말을 걸어야 한다. 상대방의 시선이 아직 내게 머물 때. 그 호기심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든,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면 승산은 있다. 적어도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뒤돌아보길 잘했다고, 그러나 나중에 뒤돌아볼 일은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영훈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뗐다.
영훈이 일어날 때 게눈 감추듯 얼른 시선을 거둔 채 다시 독서에 열중하던 여자는, 설마 했던 인기척이 테이블 앞까지 다가오자 토끼눈을 하고 그 정체를 올려다보았다. 얇은 속쌍꺼풀 속의 진갈색 눈동자가 여자를 그윽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혹시 기다리는 사람 있으세요?"
"... 네?"
여자가 읽고 있던 책을 두 손바닥으로 가리며 영훈의 눈을 바라봤다. 이 사람 뭐지, 눈 한번 마주쳤다고 이렇게 성큼 다가올 것까지는 없잖아. 빛이 가득 찬 고양이의 눈동자같이 날 선 여자의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괜찮으시면 여기 잠깐 앉아도 될까요?"
여자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자 영훈이 냉큼 앞 좌석에 앉으며 말했다. 마치 일행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자는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이 퍽이나 난감했다. 당황했지만 최대한 감정을 숨기며 물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대화 신청이요. 저랑 잠시만 대화해 보실래요?"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