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는다는 것
고3, 대학교 1학년 시절, 외할머니와 둘이 살았다.
엄밀하게 따지면 내가 할머니 댁에서 아침, 저녁, 야식 세끼를 할머니가 챙겨주시며, 보살핌을 받으면서 살았다.
토요일에도 학교 가던 고3때, 친구들이 학교 끝나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그렇게 꼬셔댔다.
난 굳세게 그 강력한 분식의 유혹을 뿌리치고 부리나케 달려서 집에 갔다.
왜냐고? 지글지글 할머니가 손수 구워주시던 삼겹살과 된장찌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할머니가 고3 손녀 잘 해먹여야 한다 하시며, 12시 땡치면 거실 바닥에 깔아놓은 신문지 정중앙에 놓여진 부르스타 위, 후라이팬에 돼지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으니까.
구워진 돼지고기에 쌈싸먹어가며 오늘 고기는 더 맛있다, 날씨가 어땠다, 내 친구 누구는 떡볶이 먹으러 갔다 안주거리로 얘기하며 주말을 보냈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평일 밤에는 할머니가 밥통에 따뜻하게 보관하셨던 순대를 꺼내 둘이 먹곤 했다. 그 당시 이마트에서는 진공포장되어 파는 피코크 순대가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연구끝에 선보이셨던 따뜻한 순대를 먹을수 있는 방법은 자르지 않은 순대와 부속물을 통째로 분식집에서 사갖고 오셔서 빈 밥통 보온 상태에다 넣어놓고 나를 기다리시는 거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내 고3 시절의 행복한 일상이다.
초등학교 시절, 주말에는 엄마가 집에서 피자며, 돈까스, 함박스테이크 등 경양식 레스토랑 메뉴를 해주곤 하셨다. 가끔씩 돈까스용 돼지고기에 빵가루 묻히는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보다가 더 큰 고기덩어리를 내꺼로 요구했었다. 어린 나이에도 칼질은 있어보였는지 동생과 나는 흥분해서 소리질러가며 밥을 먹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인가 짝사랑하던 오빠에게 잘보이기 위해 인생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결심했던 날이었다.
하필이면 그날 저녁, 아버지는 일식집으로 외식을 단행하셨다. 온 가족이 횟집으로 가서 나오는 광어, 도미 모듬회외에도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 스끼다시 메뉴 콘치즈, 산낙지, 해삼, 멍게 등등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까지 행복하게 헤헤거리며 다마시고 나는 횟집에서 울었다.
아빠는 왜 다이어트 해야하는 딸내미한테 협조하지는 못할 망정 방해하시는거냐고.
식당에서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이 어이없어 했었다.
결혼하고 난 다음 마련한 신혼집은 친정에서 엎어지면 코닿을거리였다. 엄마는 한달에 한번씩 사위를 먹이신다며 우리부부를 불러서 일본에서 먹는 가정식 백반요리, 오향장육, 양장피, 집에서 직접 만드신 리코타치즈를 곁들인 샐러드 등 솜씨를 발휘해 요리해주셨다. 명절에 시댁에 가면 어머니는 아침부터 밤에 자는 순간까지 그렇게 우리에게 먹이셨다. 아침을 안 먹는 우리부부와는 달리 하나라도 더 먹이시려는 어머니의 요청에 아침,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는 간식, 점심, 간식, 저녁, 야식 하루에 여섯끼를 배 두드려 가며 먹고 오동통해져 집으로 돌아왔었다.
유행했던 옛날 가요를 들으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향수처럼 특정 음식을 대할때 떠오르는 사람, 사랑받은 추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에게 사랑을 주셨던 분들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