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과 달리 불필요한 쇼핑하기를 그만두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혼자 집으로 가면 집에서 의사소통이 없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결혼을 했지만 나는 혼자일 때가 많았다. 내가 출근하고 나서야 늦게 일어나 휴대폰과 게임을 하다가 늦게 나가고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늦게 들어왔다. 출발한다는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고 어디쯤인지 물으면 그제야 미안하다며 이제 간다고 말했다. 6시부터 준비한 식사는 데우고 식기를 반복하며 9시가 돼서야 사람의 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엔 그의 자는 모습을 보고 나가 내가 잠들면 그때 그가 귀가하는 일이 늘었다.
그래서 나는 쇼핑을 했다. 쇼핑을 했다고 해서 그 물건이 모두 소용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홈쇼핑을 보고 인터넷을 보고 과한 구성의 물건을 싸다고 구매하고 집에다가 쌓았다. 사용할 수 없는 수많은 물건들이 집에 오면 잠시나마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나누어 주면서 대리 만족의 감정을 느꼈다. 필요 없는 옷을 사서 한번 입고 맞지 않아서 버린 옷들도 점점 늘었다. 하지만 난 물건을 싸게 샀다며 뿌듯해했다.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왜 그렇게 쇼핑을 즐겨했는지를. 그땐 공허한 마음을 물건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참 어리석게도... 그와 함께 살고 있을 때 나는 두 사람의 몫을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가장이었다. 일하다 와서 피곤하니까 쉬는 남자들과 달리, 일하느라 바쁜 딸과 달리, 일하는 며느리는 늦게나마 제사에 와 1년에 5번을 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아재 결혼식도 돌잔치도 남편이 못 오니 가정을 이룬 대표로 참여해야 했다. 내가 답답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나중에 힘들어서 내가 이렇게 했는데 당신이 나에게 그럴 수 있냐고 따져보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누가 그렇게 살래 였으니까.
모든 일을 미룬 것 자체가 사랑이 아니었음에도 그런 대접을 받는 게 부당했음에도 참은 것 또한 문제였다는 것을… 내 탓만 했다. 그의 이중생활이 폭로되고 그가 연극성 성격장애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내 탓을 시댁 탓을 하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쇼핑을 했다.
모든 것을 혼자서 책임지고 가야 하는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분명 둘이 한 가정을 이루었는데 두 사람의 몫의 책임을 혼자 져야 하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집안일도 내 몫이 없고 가계관리도 나의 몫이었고 일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아무것도 일이 없던 프리랜서에서 점차 하나하나 일을 생겨서 그 사람이 돈을 벌게 되었을 때 나는 잔소리뿐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마움이 아니라 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난 그게 너무 힘들었던 거 같다. 6년을 연애했는데 결혼 후 나는 그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고 최선을 다해 함께하려 노력했지만 그 사람은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다고 표현도 못 하고 쇼핑으로 풀었다.
이혼을 한 후 과한 쇼핑의 수는 줄었다. 아니 필요 없는 물건은 더 이상 사지 않는다. 이혼 후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10년을 알았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아 처음에는 방어기제인가 했다. 하지만 그가 방에서 게임을 하는 목소리와 뒷모습은 기억이 난다. 우린 그 모습이 익숙했고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 워커홀릭이 되었다. 이제 워커홀릭에서 벗어나 내 삶을 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 미래를 꿈꾸는 일은 나에게 설렘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더 이상 쇼핑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 행복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어떤 물건으로도 채우지 못했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쇼핑을 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처분하면서 내가 언제 이런 물건들을 다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리고 정말 쓸데없는 물건들까지 내가 사 나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혼을 하고 제일 달라진 점은 우리 집에 물건을 숫자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줄여야 부분 정리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것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할 예정이다. 공허한 마음이 차오르며 여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