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운 밤, 어둠 속에서 눈을 멀뚱 멀뚱이 뜨고 있던 아이가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 아..파...아...빠"
"소리 내서 얘기해도 돼"
"아바? 아빠! 아빠!"
말을 하게 되고 지난 32년간 너무 당연하게 불렀던 아빠라는 이름을 아이는 언제부턴가 조심히 입에 담는다. 너무 당연했던 아빠가 아이에겐 이렇게 조심스러운 단어란 것에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아주 평범했던 어느 날 아이가 할아버지를 향해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목을 손으로 감고 쑥스러운 듯. 그리고 내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때마다 함께 아빠라고 외치곤 내 뒤에 숨어버린다.
가정을 이루는 어려움,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 속에서도 느끼는 커다란 행복감을 포기하고 도망간 그 사람의 흔적을 좇는 아이를 보며 또 한 번 상심을 하게 된다.
아주 옛날, 내 사촌 동생이 아주 애기였을 때 외숙모가 집을 나가고 할머니가 키우고 있을 때 물었던 말
"할머니, 나 한 번만 할머니한테 엄마라고 부르면 안 돼?"
그 말을 아주 어린 우리 아들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너무 얻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33살을 마무리하며 깨닫는다.
세상은 점점 잘 살게 되었다는데 왜 사람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언가 잃으며 살아갈까.
내 밑으로 생명 하나 책임지기 힘든
풍요 속 상실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