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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자라기 좋을 때이다.

by 예정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감사를 바랄 수 없고,

자기 아픔만 크게 보는 사람에게

타인의 고통을 발견하기를 기대할 수 없더라.

위선에는 위선으로..

마음의 거리를 두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내게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내게는 기대를 버리는 것도

거리를 두는 것도 어렵다.

지나가야 하는 계절처럼

지나 보내야 하는 오늘

여름이다. 자라야 할 때이다.

- 25. 07. 01. 일기



<연남천 풀다발> 에서

쿠르릉 크를…..


조용한 기계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물리치료실에서

누군가는 편안히 잠이 들었나 보다.

어깨에 전류가 흐르며 펄떡이는 근육들에 온 신경이 집중되던 나는 그 코골이 소리가 좀 정겹게 들렸다.

한 주 걸러 들린 정형외과.

집 아닌 카페, 병원, 공공기관은 얼마나 시원하고 쾌적한지..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난 주말 또 최고 매출을 갱신했고, 재료를 탈탈 털어 팔고 진땀을 흘리며 몸을 갈아 넣었다.

만신이 아프고 힘든데 휴무일 바꿔주고 그러면서 제 때 쉬지도 못하고 병원에도 못 갔다.

폭염경보의 연속, 뜨거운 날씨 탓에 예년과 다르게 손님과 주문이 밀려들어와 평일 낮에도 끼니는 고사하고 엉덩이 한 번 붙이지 못하고 뛰어다니며 일을 한다.

주방 내 오래된 에어컨은 제 기능을 못해서 일하는 동안 온몸이 축축하게 땀을 흘린다.

홀 알바를 진작 구해야 했는데, 인원보충에 소극적이셨던 사장님이 원망스러워질 지경이다.

이제 7월인데,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육체노동도 힘든데, 이런저런 감정노동도 심해져서(?) 얼마나 그만두고 싶던지…

이제 7월인데 너무 지쳤다.



손이 또 가렵다.

통증 때문에 붙인 파스 알러지와 땀띠로 시작한 염증이 심해져, 간밤엔 가려워서 깊이 잠들지 못했다.

피부 관련 약까지 같이 처방을 해달라고 했다.

물리치료실의 한 칸, 어두침침한 커튼 안에서 누워 생각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만

바꿀 수 있는 건 내 마음밖에 없다고..


고장 난 관절을 아끼는 것도 내 몫

내 몸 챙기고 돌보는 일에 우선을 두는 것도

사람들 사이에 감정을 다스리는 것도 내 몫.

내가 겪는 일들이 다 내 탓은 아니지만

내 마음은 내가 지켜야 하는 거니까.

다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어야지.

찜통 같은 날씨에 마음도 지치기 마련이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 여름, 만물이 생장하는 계절 아닌가.

오랜만에 좋아하는 그림책을 펼쳐 읽었다.

나도 힘을 내야겠다.

흔들리더라도 유연하고 질기게

푸르고 푸른 여름 속에서 부드럽게

고개는 숙이되 부러지지 않는 풀처럼.

그렇게.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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