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괴물들과 공존하는 법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제 딸이 어릴 적 좋아하던 그림책입니다. 50년이 넘도록 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책으로 오페라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어린 소년 맥스는 늑대 옷을 입고 말썽을 피우다 저녁밥도 굶은 채 방에 혼자 갇힙니다. 그날 밤 맥스의 방에서는 나무와 풀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나무와 풀이 계속 자라더니 세상 전체가 됩니다. 맥스는 바다로 가서 맥스호라는 이름의 돛단배를 타고 1년 넘게 항해합니다. 배가 도착한 곳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으르렁거리는 괴물들을 보며 맥스는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어”라고 소리치며 무시무시한 이들을 제압한 맥스는 결국 괴물들의 왕이 됩니다.
왕이 된 맥스는 괴물들과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신나게 놉니다. 이들이 지칠 때쯤 엄마가 맥스에게 했던 것처럼 저녁밥도 주지 않고 잠자리에 들라고 명령하지요.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나니 맥스는 집이 그리워집니다. 이때 어디선가 맛있는 음식 냄새도 나지요. 맥스는 자기를 따르는 괴물들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갑니다. 따뜻한 식사가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방으로 말이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다 보니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상상 속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유로 가득 찬 내면세계의 탐험이야기라는 것을 아이들과 여러 차례 책을 읽으며 깨닫습니다. 내면의 바다를 건너 우리 안에 사는 괴물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언제나 고달픕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는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영토가 있고, 우리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감정과 생각, 욕망이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위험'과 동의어로 보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미지의 것을 깊이 알아보는 능력을 잃었다.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을 향한 우리의 타고난 욕망은 안전 지향의 사고방식으로 대체되었다. 대신에 우리는 소비주의로 그 욕망을 보상한다.”
라는 ‘느낌은 어떻게 삶의 힘이 되는가(비비안 디트마)’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안의 괴물들을 못 본 체하다 보면 이들에게 잡아먹힐 때가 있습니다. 쌓이고 쌓인 감정 때문에 생기는 더 큰 문제는 그것이 결국엔 터질 기회를 노리며 신체 시스템에 그대로 남기 마련입니다. 계속되는 두통과 복통, 어깨 결림, 소화불량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질투, 슬픔, 분노를 가두어 두다가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하고서 슬그머니 나타나거나, 엉뚱한 대상에 폭발하듯 감정을 표출하고야 맙니다. 그럴 때마다 속절없이 넘쳐나는 감각에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맥스를 떠올립니다. 괴물들의 왕이 되어 “광란의 시간”을 보내며 함께 뛰놀고 즐기는 과정은 우리 내면의 부정적이고 원초적인 감정들을 표현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의 괴물들을 인정하고 표현할 안전한 공간이 있을 때 괴물들의 통제를 받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에너지를 창조적인 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어두운 감정들과 대화하고 온전히 느끼는 일은 위험한 일이 아닙니다.
“제발 가지 마, 우리는 널 잡아먹을 거야. 우린 너를 너무 사랑해.”
너무 사랑하기에 떠나면 잡아먹을 거라는 모순된 메시지는 우리 내면 괴물들의 이중성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은 우리를 잡아먹을 수 있는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일부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이를 부정하고 억압할수록 더 위험해지고, 우리가 인정하고 포용할수록 더 순해집니다.
“슬픔의 힘으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며, 분노의 힘으로 변화를 일으키려는 의지를 내야 한다. 두려움의 힘으로는 내 말에 귀를 열지 않는 상대의 불확실성에 기꺼이 직면해야 한다. 제대로 변화하려면 나 스스로 어떻게 행동할지, 나의 욕구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해석을 내리고 있는지 거듭 자문해야 한다. 바로, 수치심의 힘으로 이 질문력을 키울 수 있다. 물론 제대로 변화하려면 기쁨의 힘도 필요하다. 기쁨의 힘으로 자신의 힘과 욕구에 거듭 연결할 수 있다.”
고 디트마는 말합니다. 느낌이 기쁨인가 두려움인가 슬픔인가는 관계없습니다. 온전히 모든 느낌들을 판단하지 않고 느낄 때 우리의 신체 면역력도 증가한다고 합니다.
내면의 여정 후에 돌아온 자신의 방에는 따뜻한 저녁 식사가 있습니다. 그러니 괴물들을 만나고 오더라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분노를 직시하고 두려움과 마주하고 우리의 슬픔을 바라볼 때 감정에 잠식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괴물들을 없애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있는 법을 배운 맥스처럼 그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 나설 수 있습니다.
맥스는 언제든지 다시 괴물들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의 방은 언제나 숲으로 변할 수 있고 바다가 출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평생에 걸쳐 이 과정을 반복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오늘 밤, 당신의 방이 숲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배에 올라타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떠나보세요. 다만 기억하세요. 당신이 돌아올 때, 따뜻한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