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녀가 함께 보내는 사계절 이야기
존 버닝햄의 그림책 "우리 할아버지"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그림책입니다. 손녀와 할아버지는 봄에는 씨를 심고 여름에는 해변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가을날에는 할아버지와 낚시를 하고, 겨울에는 눈이 내린 거리를 걷습니다. 계절이 흘러감에 따라 할아버지도 점점 변해갑니다. 예전처럼 언덕길을 쏜살같이 내려가지 못하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집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따뜻하게 묘사합니다. 할아버지의 변화를 애처롭거나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손녀의 순수한 시선을 통해 할아버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계절이 바뀌듯 우리의 생도 그러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의 사랑은 계속 이어진다는 걸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할아버지와 손녀는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가끔 서로의 대화가 어긋납니다. 할아버지가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맛있다고 하면 손녀는 "그거, 딸기 아이스크림인데요"라고 답하거나, 씨앗을 심으며 자리가 모자라겠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벌레들도 하늘나라에 가나요?"라고 대답합니다. 아이의 솔직함과 어른의 경험이 부딪히며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 동상이몽식 대화도 재미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세계에 충실하고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를 따뜻하게 바라봅니다. 서로 다른 관점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따뜻하면서도 유쾌합니다.
연필과 색연필로 그린 할아버지와 손녀의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자유로운 선과 파스텔톤의 색채, 완성되지 않은 듯한 여백을 통해 따뜻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이 살아납니다. 책을 읽으며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림책의 모든 장면들이 마음에 박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주야"라고 불러주시던 할머니의 볼에 제 뺨을 맞대고 있으면 할머니 로션냄새가 은은하게 났습니다. 주방에서 요리하시던 뒷모습, 늘 내 쪽으로 돌려놓던 선풍기, 두터운 손의 주름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가사를 받아 적고 할머니께 알려드렸던 기억, 한 소절씩 함께 불렀던 노래도 생각납니다. 양팔 벌려 환하게 나를 맞아주시던 할머니는 이제 휠체어에 앉아 계십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할머니는 이제는 말씀도 어눌하십니다. 면회를 가도 잠에서 깨지 못한 할머니의 얼굴만 들여다보다 온 적도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를 읽고 나니, 할머니의 현재 모습도 할머니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젊은 시절 자식들과 손주들을 키우시며 고생하셨던 두 손을 이제는 제가 꼭 잡아드립니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간식을 할머니 입에 넣어드립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되겠지요. 할머니께서 저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감싸주셨던 것처럼 저도 주름진 손으로 아이들을 어루만지고 소꿉놀이도 함께 하겠지요. 그러다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는 날도 오겠지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던 초록 소파가 비어 있습니다. 그 소파를 웅크리고 앉아 보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 저를 봅니다. 제가 이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이처럼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마치 긴 잠에 드는 거처럼 그려내고 있어서예요.
할아버지와 대화에서 엿본 솔직함과 장난기, 무심함까지도 이제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집니다. 비어있는 소파를 보는 아이의 작은 몸이 슬퍼 보이지만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죽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상실은 슬프지만 함께 했던 기억과 사랑은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할머니께 받았던 온화한 사랑이 또 누군가에게로 흘러가고 우리의 삶도 계속 돌아가겠지요. 죽음은 병원 장례식장 귀퉁이에 숨어서 우리를 맞이하는 지금, 책이 주는 이런 메시지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존 볼비의 애착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안전 기지'가 되어줍니다. 조손 관계에서 형성되는 특별한 애착이 책에서 잘 드러나 있는데요.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의 안정적인 애착을 통해 아이가 할아버지의 신체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고, 죽음이라는 상실을 건강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바닷가 놀이 시 '네 시에 차 마시러 돌아가기'와 같은 규칙을 설정해 두면 예측 가능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아이의 탐색 활동을 촉진한다고 합니다. 볼비는 이를 '구조화된 자유'라고 이야기합니다.
예기 슬픔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큰 상실이 아직 현실로 일어나기 전에, 상실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미리 느끼는 슬픔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말기암 환자 가족의 경우 환자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있을 때, 실제 사별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상실의 슬픔을 경험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슬픔은 실제 상실 이후에 경험하는 애도와는 달리, 상실이 예견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미리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하고 감정적으로 적응하려는 심리적 반응을 보이게 되지요.
할아버지의 쇠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도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보는 저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처음 할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죄진 사람의 마음으로 많이도 울었습니다. 아직도 할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저릿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죽음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매일 조금씩 보내드리는 마음으로 닥칠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학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의 이야기는 고통스러운 경험에도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단순히 슬퍼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의 가치를, 조건 없이 받았던 한없는 사랑이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저 역시 할머니의 현재 상태에서 절망하기보다는 과거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다시금 글로 써보기도 합니다. 그 사랑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커다란 이유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지금은 말씀이 어려우시지만, 이미 제게 전해주신 사랑의 방식들이 제 딸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헛되지 않고 누군가에게로 전해집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나이 듦과 죽음, 상실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아름답고 진솔하게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실의 슬픔을 통해 모든 세대의 독자들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할머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시간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할머니께서 제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려 합니다. 언젠가 저도 할머니를 만나 뵐 수 없게 되겠지만, 할머니께서 선물해 주신 추억들은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세상에 남아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