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곳에서 철저히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소리로 나를 만나는 시간, 낭독명상

by 조이캄JoyCalm

내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 '소리로 나를 만나는 시간, 낭독명상'


<책 뼛속가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옥 옮김>

낭독 15일째,


오늘은 포물선을 그리듯 소리의 출렁임이 낮아지도록 의도하며 글을 읽었다. 뭔가 애씀이 들어간 걸까, 뒷목이 뻣뻣해져 왔다. 순간 고개를 숙이고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책을 눈 위치까지 들어올려 읽기 시작했다. 차츰 당겨졌던 뒷 목에서 이완감이 일어났다. 목소리가 전보다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알맹이가 없는 듯 하고, 딱히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듣는 나의 목소리와 남이 듣는 나의 목소리는 같지 않을 것이다.


내가 듣는 나의 소리는 내 얼굴의 안쪽 공간을 울리며 들리는 것이고, 타인이 듣는 나의 소리는 내 얼굴 밖의 공간을 울리며 그의 얼굴 안 공간으로 들어가 그의 몸안을 울리며 들릴테니 어찌 그 소리가 같겠는가. 남이 보는 나의 '맨'얼굴은 만져 알 수 있다지만 나의 두 눈으로 내 '맨'얼굴을 볼 수 없듯이, 남이 듣는 나의 '맨' 목소리도 나는 들을 수 없어 나의 목소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진정으로 알 수 없다. 소리도 이러할 진데,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타인의 마음을 진정으로 아는 것도 또한 얼마나 먼 일인가.


글을 읽을 때, 특정 몸에 주의를 두며 읽곤하는데, 오늘은 주의를 두는 몸의 부위를 바꾸었다. 이전에는 뒤 꼬리뼈에 주의를 두고 그 부위에 앉아 글을 읽는다고 여겼다면 오늘은 그보다는 약간 위쪽, 허리 부근 척추 앉아서 글을 읽는다고 여기며 낭독을 이어갔다. 그러자 소리에 좀더 힘이 차올랐다.울림도 더 커졌다. 그런데, 부드러움의 느낌은 떨어졌다. 힘은 들어갔지만, 스며드는 느낌은 낮아졌다. 울림이 커지자 발음이 뭉개졌다. 울림이 커질 때는 발성기관이 크게 움직이도록 부지런히 턱과 혀를 움직이여서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것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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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마음두는 낭독명상을 10여일을 넘기자 끊어 읽기는 위치가 길어져도 무난히 한 번 의도록 읽게 되는 것 같다. 긴 글의 문장 구조도 읽음과 동시에 펼쳐보이는 듯해서 읽으면서 이해하는 것이 더 향상된 것 같다.


울림은 낮아지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소리 상태는 마치 오늘 나의 마음 같다. 한 해가 물러가고, 또 다른 이름의 한 해가 들어오는 12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전. 따스한 겨울 햇살이 흰색 커튼을 더욱 희게 만들고 있다. 부드럽고 하얀 햇살에 눈을 부시며 내년에는 좀 더 힘차게 도전하며 살아보리라..하는 마음이 목소리에서 고스란히 들어난다. 내가 그리워하는 나의 소리를 찾는 여정은 소란스러운 지금의 마음을 지나 그 끝 자락 어디메에서 끝나리라. 소란스럽고 부잡스런 이런 마음의 그 끝은 과연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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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오늘 낭독이 길어올린 저자의 한 말씀이다.

"글쓰기에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 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당신은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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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이 구절이 크게 와 닿는다.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눈길도 없이 노란 알맹이를 하얗게 애워싼 데이지 꽃이 그의 몸줄기 끝에서 차올라 피어나듯, 아름다운 나의 삶도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외롭고 긴 몸부림의 끝자락에서 차곡이 차올라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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