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지향주의의 위험한 주문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 표어는 2003년 영천 3 사관학교 연병장에 입간판처럼 세워져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 글귀가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넘기고 불행마저 즐겁게 받아들이라는 이 문장은 무슨 근사한 명언이라도 되는냥 회자되고 있다. 견디기 힘든 순간조차 긍정으로 승화시키면 결국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다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문장을 곱씹을수록,
그것이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부조리한 문화와 얼마나 깊게 맞닿아 있는지 깨닫게 된다.
성공지향주의는 무엇이든 극복하라고 부추긴다.
견디고, 버티고, 심지어 괴로움을 '즐기라'고 까지 명령한다. 이 논리는 실패와 도망을 무조건 나약한 것으로 규정한다. 문제를 피하는 것은 패배자의 태도이며,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어야 비로소 강해진다며 설파한다. 그러나 진짜 강함이란, 모든 것을 이겨내는 척하며 스스로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견딜 수 없는 것을 알아보고, 거기서 벗어날 줄 아는 용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무슨 일이 닥치든 끝내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
거기에 억눌려 우리는 점점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남들은 다 괜찮아 보이는데, 왜 나만 즐길 수 없을까?'
'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멈출 수 없을까?'
이런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면, 어쩌면 그 상황은
'애써 이겨내야 할 시련'이 아니라, 그저 내 삶과 맞지 않는 '무리한 짐'일뿐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문장은 이 시스템이 부여한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라는 요구를 은근히 정당화한다.
이것은 폭력이다.
모든 것을 극복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사람을 파괴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조차 과부하가 걸리면 멈추고, 꺼내서 점검하고, 고장 난 부품은 교체한다. 그런데 유독 우리 인간들은 자신에게 '즐겨라, 웃어라, 더 견뎌라'라고 외치도록 강요한다.
도망가는 일은 부끄럽다. 도망치겠다는 결심을 할 때 나는 여전히 주저하게 된다.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면 나는 실패자가 아닐까?'
'조금만 더 참으면 나아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안의 마음이다. 이미 내 마음은 부서지고 있는데 억지로 버티는 것은 어리석다.
즐길 수 없다면 피하라.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의 삶을 되찾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