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들리는 동네카페에 노트북 하나 들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익숙한 커피냄새, 온몸에 긴장이 풀어진다. 항상 앉는 구석진 곳의푹신한 1인용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넓은 창문 밖을 꽉 채운 보라색 자카란다 나무를 바라보며,오니온베이글에 크림치즈 잔뜩 바르고토마토를 넣은 베이글 샌드위치에 블랙커피 한잔한다. 이곳에 오면 마치지 못한 과제물도 쉽게 마무리되고가벼운 마음으로 블랙커피 한잔 다시 프리 리필해서 나온다. 비타민 먹은 효과는 잘 모르지만 아침에 베이글에 커피 한잔이면 하루 달려갈 힘이 난다.
토요일 늦은 아침, UrthCaffe에서 친구와 약속이 있다. 다양한 인종의 젊은 친구들이 꽉 찬 카페에 앉아있다 보면 10년은 젊어지는 듯하다. 시끄럽고 부산한 카페 밖 패티오에서옆테이블 젊은 친구들 소리에 우리 목소리도 고양되지만 불평할 것 없는 것이덩달아 기운이 나기 때문이다.아보카도 피자와 튜나샐러드, 나는아이스 라테 한잔을 시켰다. 식사 후 달콤한 후식, 티라미슈 한입에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오늘 나의 브런치- Urth Caffe 흉내내기>
커피숍, 베이커리 샵, 카페에서는 보통 이러한 젊은 바이브와 함께 아침, 점심, 저녁, 각각 색이 다른 모양으로 손님들을 만난다. 매일이른 아침 에스프레소 3샷으로시작하는손님, 비즈니스 미팅을 준비하는 손님들, 20대 30대 또래 친구들과의 해맑은 만남들,그때가 좋을달달한 데이트 중인 연인들까지, 카페에서 대하는 모든 삶의 일상들이 사랑스럽다.항시 바쁜 것 보면 장사도 잘돼는듯하고 이런 카페 운영이 인생로망이 된다.나도 커피숍 하나하고 싶어, 나도 카페하나 차리고 싶어, 나도 베이커리샵 하나 가졌으면 좋겠어. 그래서 우리도 했다. 전재산 다 털고 가족으로부터까지받은 적지 않은 지원금까지. 그렇게 시작한 비즈니스 하루 중 어느 날이었다.
미네소타에서 공부를 마치고 잠시 엘에이 고모집에 머물렀던 조카 혜원이가 그날 가게에 같이 간 날, 혜원이를 데리고 먼저 집에 왔다. 내 앞서 들어간 혜원이가 기겁을 하며뛰쳐나왔다.
"고모! 안에 사람이 있어."
우리 둘은 반사적으로 아파트 복도로 뛰쳐나왔고 범인은 지금 안에서 당황해하고 있을 것이다. 집 문이 스르르 열려서약간의아해하며 거실로 들어갔는데 혜원이가 자기가 머물던 방문을 열려하자 안에서 누군가가 방문고리를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다고 했다. 문이 잠겨있지 않았던 것이 그래서였구나라는 생각에 겁에 질린조카의 하얀 얼굴이 고모의 의협심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계단구석에 몸을 숨기고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아파트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는 히스패닉 매니저일 것 같은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매니저가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강도라면 분명 총을들고 있을 텐데... 위험을 감지하고 혜원이를 먼저 피신시키고 맨발로 아파트 밖으로 나와 운전 중인 남편에게 전화하니 당장 911을 부르라고 했다.
처음 하는 911전화였다. 워키토키 하듯 주소확인과 안전을 확인하며그가 총이나 흉기를 들고 있냐고 물었다. 숨 가빠하며 사람이아직안에있어서알 수 없다 하자안전한 곳으로 피해있으라고 했다. 도둑의 얼굴을 꼭 보아야 했던 나로서는 조금은 아쉬웠다. 왜냐하면 매니저는 같은 아파트 아래층에 살기 때문에 그가 우리 집서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아무 증거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도에 CCTV가 있지도 않고. 그래도 총격사고를 대비해 그래야 할 듯싶어 아파트 밖에서 911과 계속 워키토키 하며가슴을 졸였다. 가장 겁났던 것은 쪼르르 달려 나와야 할 우리 강아지 초코가우리가 들어갔을 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독극물이라도 먹였다면... 잠시 후 남편과 경찰들이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했고 911에 경찰도착을 알리고 통화를 종료했다. 어느새 친구도 달려와모두들 무사하길 기도하고 있었고지나가던 행인들도 웅성대며 맨발의 아시안여자가 떠들어대는 것을 들으려 했다.
세명의 미국경찰들은 외모에서부터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당황해 있는 우리들과 간단히 상황을 나눈 후 007 영화에서처럼천천히 그러나 날렵히 아파트 내부로 들어갔다. 서로 호위하며. 이를 지켜보는 나는 예전 필리핀에서 권총강도 만났던 사건과 오버랩되면서 어찔하며 강아지 초코가 안전하길 간절히 바랬다. 사실 집에 훔쳐갈 돈도 없고 물건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우리 혜원이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전화연결도 안되었다. 나중 알고 보니 총격 사고가 날까 아주 멀리 피해 있었단다. 고모와 초코는 내버려 두고...
경찰이 내려와 우리를 위층으로 불러서 올라갔다. 아파트 거실로 들어와 달라진 것은 없는지 없어진 것은 없는지 물어본다.
전날 덮고잔 이불들, 옷가지들, 열려있는 서랍들, 강아지 밥그릇, 식탁 위 우리 야식 밥그릇,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 있는 강아지 장난감... 진짜 도둑이 한차례 흩어놓은 모습이긴 했는데 달라진 건 없었고 경찰과 다시 보니 새로울 뿐이었다. 혜원이가 고모네 잠시 머무는 동안 방에서 자게 했고 거실에서 우리가 강아지랑 잤던 시절 새벽 일찍 1시간 넘게 걸리는 카페 7시 오픈시간 맞추려면 새벽 5시 40분 정도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허겁지겁 뛰쳐나간 것이었다. 경찰들 눈에도 도둑이 뒤집어 놓은 것 같으니 우리에게 확인시켰다.
그러나 우리의 관건은 사실 방이었다. 아파트 문은 열려있었고 범인은 안방문을 붙잡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초코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이 딜레마였다. 범인은 아무래도 매니저, 경찰이 올라오기 전 바로 자기 집으로 내려간 것 아닐까. 나는 계속 뚱뚱한 히스패닉 매니저 아저씨가 찜찜하게 걸렸다. 몇 차례 열쇠를 안에 두고 나온 우리에게 자동으로 잠긴 문을 열어주었고 내부 고치는 일로도 수차례 빈집에 들어와 일을 처리하곤 하였다.
근육질의 백인경찰은 우리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방은 어떠한지, 달라진 것은 없는지... 그리고 방문이 잘 안 열렸던 까닭을 설명해 줬다. 대학공부를 마치고 그간의 모든 짐들을 담아 온 혜원이 이민가방이 엎어져 방문을 막았던 것이다.
"Where's my puppy?"
나는 그 상황에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그럼 초코는 집밖으로 나간 것인가? 문이 닫히면 안에서 자동으로 잠기게 되는 문인데 가끔 잘 닫히지 않으면 잠기지 못할 때가 있다. 카페 오픈시간 맞추려 새벽에 허둥대며 나가다 보면 문이 잠긴 걸 확인할 겨를 없이 겉옷 하나 들고 차고로 뛰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그날도 그랬던 것이다. 방이고 거실이고 도둑이 든 것도 같고 안 든 것도 같아 의아해하던 경찰들 앞에 부끄러워할 겨를 없이 내게는 집에 도둑이 든 것보다 더 무서운 상황이었다. 초코는 어디에...
경찰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민가방 뒤로, 정신없이 헤풀어진 혜원이 옷가지들, 화장품들, 가지가지 물건들, 한쪽에 빼꼼히 초코가 앉아있었다. 녀석도겁에 질렸는지 움직이지도 앉고 짖지도 않았다. 초코를 안아 들고 경찰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때는 겨를 없어 생각 못했지만 경찰들은속으로치우고 좀 살아라 어글리 코리안들아그랬을지 모르겠다. 건장한 미국경찰 셋이 1 베드 작은 아파트 안에서총격전에 대비하며 범인을 잡으려 했을 그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배꼽 잡는다. 그리고 혜원이... 이 기집애...
카페 발렌티노를 계약하고 2주 트레이닝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전 사장님은 본인의 수많은 경험담들을 침 튀기며전수해 주셨다.이제 우린 돈만 세면 될 듯싶었다. 트레이닝마지막날, 다 마치시고 떠나실 때앞으로불어닥칠 비즈니스를 한 문장으로 예견해 주셨다. 역시 고수셨다.
"이제 내일부터 전쟁입니다"
카페생활의 안과 밖이 이것이었다.
커피냄새, 빵 굽는 냄새, 평온함과 따뜻함, 환대와 너그러움, 생동감과 에너지,포만감과 웃음소리들, 기대와 흥분, 그 바깥쪽에 반전의 전쟁이 있다는 것을, 아마도 독자 중 이를 몸소 아는 자가 혹시 있다면 그에게 진한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우리는 그 후 카페 가까이로 이사를했고지금까지 이 동네에 살고 있다.그 전쟁이 다 끝났는데도 집에서 카페놀이를 하고 있는 것 보면 그 전쟁시절이 그립기도 한 듯하다. 남편은 지금도 호시탐탐 레스토랑 비즈니스를 찾고 있다. 아직 살아있나 보다. 그것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