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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 shin 9시간전

놀마의 아이리스 정원

강아지 밍키를 데리고 산책하는 길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너무 아파서 꼼짝도 못 하는 날을 빼고는 밍키와 항상 그 집 앞을 지났다.  주인들의 취향대로 심긴 꽃나무, 과일나무까지, 곱게 깎여진 잔디와 각양 식물과 꽃으로 다듬어진 집들을 지나며 만나보지 못한 집주인들의 성향과 그들의 일상까지도 대충 가늠하곤 하였다.
 
 이 동네 이사 들어와 처음부터 오랫동안 놀마의 집은 항상 닫혀있었고 그 정도의 넓은 땅이라면 꽤 멋스러운 정원을 가꾸었을 법한데도 놀마의 집 주위는 풀하나 나지 않은 굳고 단단한 땅이었다. 2-3년 된듯하다. 어느 날 그 집 문이 열려있었고 80대 정도로 보이는 미국 할머니가 그 굳은 땅을 파고 흙을 고르고 있었다.  큰 관심 없이 밍키와 나는 그곳을 매일 지나며 나이 든 여주인의 수고에도 별 차이 없는 볼품없이 파헤쳐진 땅을 꽤 오래도록 보았다. 스프링 쿨러나 다른 아무 관수시설이 없어서 흉물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스테인리스 기다란 물호스가 꾸불꾸불 집안에서부터 담을 넘어 마른땅을 적시고 있었던 모습에 할머니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애써 화초를 심는다해도 물 주는 것부터 제대로 갖춰지지 못해서 관리하기가 힘들 텐데... 굳이 저 연세에, 그것도 아무 돕는 사람 없이 혼자서 말이다. 나는 이제컷 그 집에서 그 할머니 외에 다른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안쓰러운 마음에 말을 걸었었다.
 
노란색 아이리스들이 심겼고 피는 듯하다가 지었다. 다음 해엔 보랏빛 아이리스들이  사이사이 심기더니  두 색이 어우러진 아이리스 화단이 얼마나 멋스러운지 마치 나의 정원인양 나는 지나가다 멈춰서 피는 꽃, 지는 꽃들을 눈여겨보았다. 놀마의 정원이상으로 더 멋진 정원들이 당연히 있지만  이곳에 오래도록 발이 멈춰 서게 된 것은 꽃이 피기까지의 그 시간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올봄엔 커다란 스페니쉬 라벤더들을  군데군데 심어서 놀마의 정원은 더더욱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첫해 심긴 노란색 아이리스들은  단단한 꽃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누렇게 시들어 버린 겉꽃잎들은  보랏빛 아이리스의 후광 속에서 26년 전 떠난 나의 한국 봄날을 생각나게 했다. 목련나무 아래 떨어져 있는 가슴 시리도록 고고한 보랏빛과 잿빛 잎새들, 밟고 지나가기 미안해 몇 잎 주워 들곤 했던 20대의 봄날들도 그 짧은 시간에 후루룩 올라왔다.
 
 오늘 오랜만에 밖에서 정원을 가꾸고 있던 놀마를 만났다. 우리는 둘 다 좋지 않은 기억력에 서로의 이름을 다시 물었고 놀마의 이름을 듣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 이름을 또다시 잊을것같은 염려를 하고있었다. 쭈그렸던 허리를 힘겹게 피면서 푹 뒤집어쓴 모자를 위로 제치고,  놀마는 자신의 정원을 종종 그냥 지나치지 않는 내게 그동안 꽃나무들을 가꾸며  실패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실패했던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녀가 지금 얼마나 스스로 자랑스럽고 대견해하는지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오지랍일까.  놀마가 궁금해졌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집안에서  혹시나 누군가 아팠던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의 인생에 이렇게 타인의 흔적이 새겨진다. 가끔 우울하다 말하기 죄스러워 속으로 꿀꺽 삼키곤 했던  내 60대 초반에 이렇게 해서 아이리스에 푸욱 빠져들었다.  아이리스는 일 년에 한차례 밖에 꽃을 볼 수 없어서 아쉽다고 놀마가 말했지만 나는 매일 밍키와 산책을 하면서 보았다.  바람으로 꺾여 부러져있는 꽃대를 세워주며 놀마의 안타까운 마음을 보는듯했고, 최근 심어놓은 스페니쉬 라벤더를 보면서 그녀의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는듯했다. 깜박거리기 일쑤인 나지만 80대, 90대 할머니가 되어도 잊지 않을 것 같다. 놀마의 아이리스 정원. (놀마의 아이리스가 한창일때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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