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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 shin Aug 16. 2024

무자식 상팔자의 우연과 인연

나는 노인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그곳에 계신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내용 중 자식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어떤 때는 고마움, 자랑, 어떤 때는 원망이나 아쉬움.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내게도 물으신다.


"신선생은 애몇이야?"


대화의 흐름이 갑자기 달라질까 봐 적당히 말씀드린다.

"하나 있어요"


어떤 때는"둘인데 하나 보내고 하나 우리랑 같이 있어요" 하기도 한다.


"딸? 아들?"

"딸이에요"

"딸이 좋아"


손뼉까지 치시면서 딸이 좋다 하신다. 조금 전에 당신 딸이 무심하다 하시던 분이...그 정도에서 적당히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괜찮은데 궁금해하시는 것들이 많다.


"시집은 보냈고?"

"아뇨, 집에 같이 있어요"

"좋지, 좋아... 딸이랑 같이 살면 좋지..."


질문이 계속될 것 같다. 그때쯤에 웃으면서 말씀드린다.  


"사실은 저 아이 없어요. 제가 말한 딸은  우리 집 강아지예요. 그 녀석이 우리에게 진짜 딸짓을 하거든요."


늦게 결혼하고 2번 유산 후에, 인공수정, 입양, 위탁부모등 이런저런 사연들 끝에, 더 이상 아이 없는 것에 미련버리고 아쉬움을 갖지않기로 했다.    


"아고... 어쩌나... 자식은 있어야 하는데..." 그러시다가, "무자식이 상팔자여" 하시며 갑자기 민망한 마음에 분위기 모드를 전환하신다.


"맞아요, 무자식이 상팔자예요" 하고 웃으며 응대해도 어느새 자식 흉을 보시던분들 조차도 나를 보시는 눈빛에 짠한 빛이 역력해진다.


"애는 하나 있어야 하는데... 나이 들어선 그래..."




뒤늦게 공부하고 항상 집을 떠나 살아서 결혼이나 출산이야기는 잔소리로 들렸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아이 부분에 대해 의논할때도 입양을 고려하기로 했었다. 그러다 임신이 되면서 얼마나 기뻤었는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기고만장해도 될 듯이 진실로 자랑스러웠다. 기고만장함은 아주 잠시, 첫 임신초기에 유산을 했다.  두 번째 임신도 조심한다 했지만 동일하게 초기에 유산을 했다. 의사는 나의 습관성유산과  노산으로 인한  아이가 갖게될 장애위험성상기시키며  아이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는것조심스레 권했다. 그때는 아쉬웠다. 좀 더 서두를걸... 나는 그렇다치고 남편이 장손인 시댁을 생각하면 죄송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임신이 안되었다면 덜했을텐데... 이미 마음을 먹고 있던 터였기에.


위탁부모를 하다가 입양기회가 주어질 때 입양을 하면 입양기회도 높고 기다리는 시간이 빠르다는 조언을 듣고 위탁가정교육을 마쳤다.  소셜워커가 집을 방문하고 인터뷰하면서 집의 안팍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당시 살던 단독하우스에  임대로 이사 들어가기 전부터  넓은 뒷마당 뒷채에 한국 아저씨가 혼자사셨다. 각각 독립되어 있고 울타리까지 쳐있다할지라도 서류상 같은 주소라면 그곳에 사는 사람까지 지문검식과 함께 신원조회가 들어가야 한다는것이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그분은 그 일이 어렵다고 말씀하셔서 우리는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인연이 아니었을까. 이삿짐을 싸면서 우리 부부는 입양이나 위탁가정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가 있었고 무자식으로 살기로 용단을 내리게 되었다.


막상 입양이나 위탁가정 프로그램 진행을 내려놓고 보니 삶이 무척 단순해졌다. 단순함으로 느꼈던 것은 지금 돌아보니 쓸쓸함이었을 것 같다. 우리 둘 다 유학생으로 와서 미국서 자리 잡게 되었고 한인커뮤니티와도 좀 떨어져 있는 동네에서 바쁘게 일만 하던 터였다. 인공수정이든 입양이든 그래도 소망을 가져보고 더 늦기 전에 해보기로 했던 노력 중에 이미 자식에 대한 부성과 모성을 느꼈던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새로 알게 된 그때 감지 못했던  감정은, 그 계획을 완전히 내려놓았을 때, 또 다른 형태의 유산을 경험했던 것과  유사했다.


그 쓸쓸함을 우리 첫째, 초코가 완전히 내몰아주었다. 몰티즈와 요크셔 믹스인 초코를 데리러 간 날, 주인집에 들어갔던 남편이 그냥 나왔다. 일이 잘 안 되었구나 했을 때 남편의 한 손에 딱 들어간 3개월된 강아지가 있었다. 장난감처럼 아주작은 흰색과 검은색이 섞여있는 예쁜 강아지였다.  Choco라는 이름을 주었다. 초코는 사람을 좋아하고 온순하고 착한 성격이었다. 우리에게 준 기쁨도 얼마나 큰지 고마운 마음이 항시 가시지 않는다. 



초코가 10살이 났을 때 갑자기 뒷다리를 불편하게 끌기 시작해 병원을 갔지만 처음 갔던 두 군데 병원에선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전문의를 만나게 되면서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점차 시력까지 잃어가면서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가슴 아프고 눈물 나는 시간이었지만 치료를 하면서 시력도 돌아왔고 걷는일도 회복하였다. 그때부터는 초코와 함께 하는날이 당연한 것이 아닌것과, 우리와 함께 할 초코의 하루가 어쩌면 1년의 몫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사한 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이름 한번 불러도 그저 부르지 않고 마음과 눈빛을 불렀다.   


그렇게 1년정도는 큰 무리 없이 지내는듯하다 어느 날 앉지를 못하고 서서 우리를 자주 쳐다보고 안절부절못하였다. 호흡에도 이상을 보여서 금욜 저녁 응급실 간 것이,  코를 떠나보내고 토요일 새벽에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차라리 병원을 가지 않았으면 았을까... 주말이라 담당의사가 없었고 응급실 의사의 무리하게 시도한 인공호흡 탓으로 여겨져 원망스러웠다. 초코가 너무 고통스러워했고 병원에선 생존율이 없다 하여 조금이라도 초코를 편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안고있는 가운데 안락사를 했다.  그 시간들은 너무 힘들고 슬퍼서 글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새벽에 병원에서 돌아와 초코의 물건들을 다 치웠다. 보면 더 힘들 것 같아서였다. 몇 시간 지나 깨어보니 집이 텅 빈 것이 그 빈자리가 더더욱 했다. 새벽까지 병원에서 그렇게 울었는데도 막상 초코 없이 깬 첫날 토욜아침, 화장실을 다녀온 남편은 초코의 부재에 침대에 누워 초코를 불러가며 울어댔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나 역시도 초코를  키우기 전까지는 애완동물에 지나친 애착을 갖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적으로 허하거나 심리적 장애가 있지 않나 속으로 넘겨짚던 사람이었다. 두번이나 유산을 경험하고 아이 없이 강아지를 키우며 엄마 아빠 소꿉장난 하듯 살았던 터였으니 더하지 않았을까.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을 바꾸어 아무래도 다른 강아지를 데려와야 할 것 같다고  우리를 위한 다른위로가 없어서 그렇게 결정했다.




남편이 어느 날 밤 9시경에 어디를 다녀오겠다고 한다. 그것도 꽤 거리가 떨어져 있는 지역에 사시는 목사님을 뵈러 간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같이 가겠냐 해서 따라나섰다. 깜깜한 밤에 고속도로를 한참 타다가 내린 곳에서 목사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지만, 그러던 중 차 한 대가 섰다. 어떤분이 강아지 3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남편은 결혼기념일 깜짝선물을 준비했다. 온라인상에서 보고 통화하며 정해놓은 가장 이뻤던 녀석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팔렸다는 주인의 말에 남편은 몹시 아쉬워했다.


데리러온 녀석은 안나오고 다른 3마리의 강아지를 보며 남편은 내게 어떤 강아지를 선택할지 물었을때 그중 가장 못난 녀석을 들었다. 다른 한 녀석은 잠에 취해 있었고 또 다른 녀석은 차멀미에 토하고 차안에서 홍역을 치른 후였다. 예쁘기는 멀미한 녀석이 가장 예뻣다. 남편은 그녀석이 가장  이쁘다며 자꾸  만졌다.  그러나 첫째 강아지 초코가 아프다 갔기에, 아픈 것을 지켜보고 또 그렇게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었에, 나는 쁜 것보다 셋중 가장 쌩쌩한, 가장 못나고  조그만 강아지를 택했다. 우리와 인연이 되어 지금 식구가 된 지 4년이 지났다. 털을가진 녀석이라 Minky라는 이름을 주었다. 7월에 초코가 떠났고 다음 해 5월 우리의 결혼기념일 선물로  밍키가 우리 집에 왔다. 남편은 우리가 데리고 오지않았으면 팔리지도 않았을것이라며 우연히 맺어진 인연이란걸 신기해하며 밍키를 바라보곤한다.


3달된 밍키가 우리집 온 첫날
태어난 이래 가장 긴 여행을 했으니
고단했나보다.
가족을 떠난 낯선곳에서의 밍키

 작은 녀석이 이렇게 컸다. 아래의 사진들은 왈가닥 밍키의 4살 사진들이다.

현재 4살된 밍키


초코가 집에 올 때, 그리고 떠날 때, 밍키가 집에 올 때, 그때마다 장미화분을 샀다. 초코 때는 붉은 장미, 밍키 때는 노란 장미를 샀다. 우연이 만난듯한 강아지들이 인연이 되어 무자식 우리 집에 기쁜일, 슬픈일, 이야기들을 주었고, 지금껏 오래도록 3살박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듯하다. 화단의 장미들, 또 다른 사랑의 의미로 소중한 생명의 인연으로 다가온다.


사람과의 인연이야 오죽할까. 우연이 인연으로 엮기며 운명으로 가기도 한다. 모든 우연이 인연이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연이 운명으로 가는 길은 아니지만, 우리의 운명은 분명 인연에서 왔고 인연은 우연으로부터 온 격이니 우연한 순간들도 얼마나 귀한지 그저 보낼 일들이 아니다.


무자식 상팔자의 우연과 인연들, 앞으로 또 어떤 우연과 인연들이 우리에게 운명처럼 올까. 기대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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