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도하는 한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많은 시행착오 중 하나일 뿐
12월, 정말 오래 기다린 후배의 결혼식이 있는 달이었다.
십여 년을 넘게 자매처럼 지내며 '옷 잘 입는 멋진 언니'로 후배 가족과 지인들에게 알려져 있으니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청첩장을 받아 든 순간부터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했다. 겨자색 니트 치마는 세련되었지만 격식이 없고, 검정 바지 정장은 딱딱해 보였다. 결국 비싸게 구입 한 검정 배색 치마 정장을 골랐다. 남편과 딸에게도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흥분되고 들뜬 마음으로 도착해 보니 결혼식장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샹들리에가 늘어진 홀은 바깥의 추위는 아랑곳없이 온기를 뿜어내고, 실내에는 코트 아래 입고 온 블라우스나 셔츠등을 입은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로 넘쳐났다.
내가 선택한 코트 없이 입을 수 있는 겨울 정장은 실내에서 입기엔 너무 덥고 무거웠다. 나는 후배의 지인, 가족과 인사를 나누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화장은 땀으로 얼룩지고, 손질한 머리도 가라앉아 스타일이 망가졌다. 스타일에 자신이 없으니 태도도 주눅이 들었다. 내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는 이미 다 빠져나가버렸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린 날인데 피로연이 끝나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집에 와서도 한참 동안 얼굴이 화끈거렸다. 왜 따뜻한 실내라는 것을 계산하지 못했을까? 겨울이라는 계절보다 실내라는 것을 먼저 알았어야 했다. 기대했던 순간을 망쳐버렸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설득할 말이 없어서 우울하고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실패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매력 없는 순간까지 다 포함해 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이후, 중요한 약속일수록 힘 빼고 자연스럽게 입기가 내 방식이 되었다. 조금 더 힘을 주고 싶을 때 힘을 빼는 법을 익혔다.
창피한 순간을 겪었기에 다른 창피한 순간들이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옷차림이 좀 허술해도 이제 더 이상 옷 때문에 내가 같이 허술해지지 않는다. 웬만한 일에는 기가 죽지 않는다.
매를 맞은 사람이 맷집이 좋아지는 것처럼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내면이 단단하여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의 성공이 아니라 쓰러지지 않는 맷집이고, 실패하지 않는 법이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법일 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구글, 페이스북, 애플이 모여있는 실리콘밸리는 성공의 요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실리콘밸리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한 번의 성공은 알려지지 않은 99번의 실패 뒤에 나온 결과이다.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소중하게 다룬다. 그들은 페일콘(failcon)과 퍽업나이트(FuckUp Nights) 같은 문화를 통해 실패 경험을 발표하고 서로 공유한다.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이 성공을 위한 자양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해도 계속 도전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실패한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새벽 기상과 건강한 식단을 결심하지만 1월이 가기도 전에 흐지부지 되어버린다. 아침잠의 달콤함과 야식의 유혹을 이겨내기 못해 또 ‘작심 3일’인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그러나, ‘내가 그렇지 뭐’ 좌절하는 대신 자신에게 다시 시도할 기회를 주자. 다시 결심을 세우고 이어나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실패는 흘러 보내고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대신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된다.
실패하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이다.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최종적 결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시도하는 한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많은 시행착오 중 하나일 뿐이다. 오늘 입고 나온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기가 죽는 대신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발견한 날로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