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만 남기기
이사를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옷 정리부터 했다. 입고 다니는 옷은 정해져 있는데 가지고 있는 옷은 어찌나 많은지 버리고 가야 했다. 몇 년째 옷걸이에서 계절을 지나는 옷들이다. 비싸게 주고 사서, 지금은 안 입어도 언젠가 입을 것 같아서, 막상 버리려고 보면 또 괜찮아 보여서 다시 걸어둔 옷들이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아, 이런 옷이 있었지’하고 그 옷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그래서 옷을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입으려고 했지만 그런다고 안 입던 옷을 다시 입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결국 정리가 필요했다.
막상 정리를 하려고 보니 막막했다. 옷마다 간직해야 할 이유도 다양했다. 롱 패딩조끼는 지금은 입지 않지만 골프를 다시 시작하면 입을 것 같고, 베이지 롱 패딩은 겨울 여행에 적합할 것 같았고, 홀터넥 원피스의 예뻤던 기억을 간직하고 싶었다.
차라리 버려야 할 옷의 기준은 명확했다.
첫째, 내 몸을 불편하게 하는 옷이다. 뒷주머니에 큐빅이 가득 박힌 게스 청바지는 뒷모습이 너무 예뻐서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신축성 없는 청바지는 불편해서 입을 수 없다.
둘째, 입으면 못나 보이는 옷이다. 그때는 예뻤는데 지금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옷들이 있다. 유통기한이 다한 것이다.
셋째, 시간 낭비하게 하는 옷이다.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옷이 있다. 이렇게 코디해도 어울리지 않고 저렇게 코디해도 이상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간 맞춰 입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옷장만 차지하고 있다. 이런 옷들은 내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는다. 버려야 한다.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렇게 기준을 세우고 옷을 버려 나가니 옷장 디톡스가 이루어졌다.
옷이 많으면 잘 입을 것 같지만, 옷이 무조건 많다고 해서 잘 입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옷이 많으면 옷 하나의 효용가치는 떨어지고 소유물이 적을수록 가진 것의 가치는 소중해진다. 버리고 남은 옷의 가치에 집중하면 더 멋진 코디가 가능해진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돋보이게 하는 옷이 있고 나를 못나 보이게 하는 옷이 있듯이, 사람도 나를 좋은 사람이게 만드는 이가 있고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이가 있다. 나는 완전히 좋은 사람도 완전히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나의 모습이 달라진다.
어떤 친구에게는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는 커피값도 아깝다.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이가 있고, 내 안에 못나고 옹졸한 면을 자극하는 사람이 있다. 나와 처음부터 맞지 않는 사람이다. 내 단점을 자극하는 사람은 멀리해야 한다. 그런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내가 미워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옷장처럼 불편한 것은 비워내는 디톡스가 필요하다.
욕심으로 안고 왔던 옷들을 버리며, 비워야 할 것은 나중에 입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고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라는 것을 알았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어쩌면 잘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 여지를 두고 서성이는 것은 결국 내 시간과 마음만 낭비하게 한다. 차라리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에 매달렸던 마음을 비우고 나면, 옷이든 사람이든 진짜 내 것만 남는다.
안 어울리는 옷에 미련두지 말고 맞지 않는 관계에 마음 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