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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nina Oct 19. 2024

인생의 오브제가 되어 줄 단 한벌을 가질 것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담은 옷은 오브제가 된다

일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2001,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단 한 가지 기억만 천국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고를 것인가 묻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일반인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는 내내 나 역시 인생의 소중한 기억 속을 더듬고 다녔다. 소소하고 작은 추억들은 옷으로 먼저 기억났다. 




생애 첫 심부름을 하느라 팝콘 소쿠리를 들고 위태롭게 걸어오던 4살 딸이 입었던 연보라색 카디건, 여름휴가를 처음 같이 보낼 때 입은 남편의 하와이안 셔츠와 흰색반바지, 처음 교사로 가정 방문을 가던 날 입었던 흰 블라우스와 검정 스커트, 그렇게 옷이 떠오르면 그때의 햇빛, 바람결, 기분까지 생생히 따라 살아났다. 


우리는 중요한 일을 기억할 때 그날 입은 옷까지 기억난다고 한다. 옷은 기억의 저장소가 되어 준다. 남기고 싶은 단 하나의 기억은 남기고 싶은 단 한 벌의 옷으로 우리 곁에 실재하며 머문다. 


로맹가리 소설 '자기 앞의 생'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년 모모와 늙은 창녀 로자 아줌마의 이야기이다. 로자 아줌마는 옷장 깊이 넣어두었던 기모노를 입혀 달라고 한다. 이제 늙어 섬망이 깃든 육신이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기모노는 젊은 날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던 시절에 입던 옷이다. 로자 아줌마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은지 잘 알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는데 필요한 딱 한 벌이었다. 기모노는 로자아줌마의 인생이다. 


우리는 옷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옷은 말투, 목소리, 눈빛, 걸음걸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표식이 된다. 아무리 옷이 많아도 한 번에 입을 수 있는 옷은 한 벌뿐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단 한 벌이 필요하다. 죽을 때 가지고 가고 싶은 기억처럼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담은 한 벌의 옷은 인생의 오브제가 된다.


간절히 소망했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입었던 옷,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옷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서려 있고 지향하는 삶에 대한 가치가 드러난다. 




 나의 정체성을 담은 옷을 가지러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천국으로 가기 전에 인생에 단 하나의 기억을 고르는 것처럼 딱 한 벌 입을 수 있을 때 나의 어떤 모습을 담아 입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을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  


만약 그런 옷이 없다면 내 인생의 찬란한 순간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 나는 지금 소망이 서린 옷 한 벌을 마음에 품고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향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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