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를 하다 책갈피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6학년 소풍 사진이다.
친하게 지내던 여학생 10명이 모여 10 총사를 만들고 학교를 주름잡고 다녔다.
사진 중앙에 담임선생님과 인기 많던 남학생들이 앉아있고 우리 10 총사는 뒤에 둘러 서있다.
사진의 오른쪽 앞에 보란 듯이 서 있는 나는 꽤 멋쟁이처럼 보인다.
끈 달린 운동화에 무릎까지 오는 흰색 타이즈를 신고, 검정 주름치마와 콩 단추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갈색 카우보이 조끼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
다른 친구들이 어깨를 맞대고 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반면, 나는 한 손으로 모자 끝을 살짝 잡고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서 있다.
소풍 갈 때 웬 치마냐고 생각하겠지만, 당시에 소풍날은 누가 더 예쁜 옷을 입고 오는지 은근한 경쟁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부잣집 딸 정은이는 새로 산 빨간색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왔다.
정은이의 새 옷에 비해 내 주름치마와 블라우스는 평범해 보이지만 갈색 카우보이 조끼와 챙모자가 패션을 완성시켜 주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사업을 확장해 부모님은 공장을 지어 나가고 집에는 할머니와 언니와 내가 남았다. 할머니는 까칠하고 예민한 나보다 영특하고 붙임성 좋은 언니를 눈에 띄게 편애했다.
사업이 바빠 가끔 집에 오는 아버지도 장녀인 언니를 특별하게 생각했고 엄마 또한 둘째의 마음을 살뜰히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나는 항상 사랑을 독차지하는 언니 뒤에서 아버지나 할머니가 나를 더 사랑해 주기를 바라며 서 있었다. 주목받고 싶었지만 주목받지 못한 둘째는 자연스럽게 옷으로 치장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한 장의 사진에는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내 소망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자라서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옷 입기에서도 자유롭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랑받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그들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은 사랑받기 위해 시선이 남들에게로 향해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해야 예뻐 보이는지 신경 쓰느라 자기 검열에 걸린다.
타인을 의식한 눈치 보는 옷 입기가 시작된다. 옷은 내가 더 많은데 왜 번번이 언니가 더 과감하고 멋지게 옷을 입는지 알 것 같다.
자유로운 멋쟁이를 지향하지만 끊임없이 남 눈치를 보는 나의 둘째 콤플렉스에 대해 얘기하자 맏이인 친구는 자신의 장녀 콤플렉스는 더 심하다고 털어놓았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아들을 못 낳는다고 구박하는 할머니 사이에서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란 친구는 자신이 엄마의 버티목이 되고자 했다. 몰래 귀를 뚫고 와 아버지에게 혼이 나면서도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동생을 보면 가끔 부럽기도 했지만 자신만은 부모의 기대에 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혼 후에도 친정 갈 때는 아버지의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옷차림에 신경 썼다고 했다.
친구는 그것이 엄마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친구는 자기 자신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엄마의 착한 딸이 되겠다는 다짐이 먼저였다. 착한 딸이 아니면 자신의 존재는 가치가 없어지고 엄마에게 기쁨이 되어야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엄마가 내세울 만한 자랑스럽고 착한 딸이 되어야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나만 특별히 결핍이 있는 것일까?
부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타인에 대한 최초의 인정 욕구이다.
첫째라고 다 특별히 사랑받거나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다 짊어지는 것은 아니다.
둘째라고 다 눈치 보며 자라거나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다.
따라서 형제 서열에 대한 섣부른 일반화는 금물이지만,
모든 형제자매들은 부모에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리고 더 사랑받기 위해 경쟁한다.
옷으로 주목받고 싶어 하는 나와 엄마의 기쁨이 되고자 하는 친구의 내면에는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있다.
그 사실을 마주하고 인정하고 나자, 친구는 아버지가 고집하는 긴 생머리를 비로소
자를 수 있었다.
누구나 부모님의 사랑과 칭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지나갔다.
우리는 더 이상 부모님의 사랑과 칭찬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니다.
내 인생을 오롯이 책임지고 끌고 갈 힘과 권리가 내게 있다.
나에 대한 사랑은 나만이 100% 채워줄 수 있다.
나를 채워줄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내 손에 있다는 것을 알면
지나온 결핍에서 떠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