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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nina Oct 15. 2022

상처도 행운처럼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옷 좋아하는 나는 가끔 옷 관련 유튜브를 보며 힐링을 한다.

연예인 B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노화의 흔적 없이 나이 든 60대라서 주로 부잣집 사모님 역할을 맡아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유튜브를 보고 놀랐다. 정확히는 명품을 그렇게나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옷걸이 사이 어깨를 비좁게 맞대고 있는 옷들이 루이뷔통, 구찌 , 샤넬, 디올, 발렌티노, 프라다, 톰 브라운, 아쉬시 등 온갖 명품들이다. 그런데 그런 드레스 룸이 4칸이었다. 샤넬, 에르메스가방들은 색깔별로 시리즈를 이룬다. 나 같은 월급쟁이나 내 친구들은 평생에 한 벌 살까 말까 한 명품들이다. 그녀의 드레스룸에는 강남 아파트 한 채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주방을 보고 더 놀랐다. 오래되어 보이는 냉장고 옆에 있는 것은 분명히 김치 냉장고이다. 그것도 허리를 숙이고 꺼내야 하는 일명 뚜껑형 김치 냉장고이다. 밑에 있는 김치를 꺼내려면 위에 있는 김치통을 먼저 끄집어 올려야 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마저도 냉장고와 색깔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김치냉장고를 검정 시트지로 리폼하는 것을 보았다. 김치냉장고는 67만 원이다. 삶의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연예인 B만큼은 아니지만 유독 명품에 집착하는 친구가 있었다. 골프레슨을 함께 받던 친구이다.

고급 장비에 비싼 골프복을 갖춰 입은 그녀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나이가 같았고 무엇보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레슨이 없는 날도 만나서 밥 먹고 차를 마셨다. 화려한 미모의 그녀가 들어서면 카페의 눈길이 한순간 그녀에게 쏠렸다가 흩어졌다. 어느 날 그녀는 내 립스틱 브랜드를 물어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샤넬인 것 같다고 넘버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내가 입은 옷의 브랜드를 물어왔다. SPA 브랜드나 보세 옷이라고 하면 묘하게 감탄했다. 더 친해지자 아예 내가 입은 옷의 목 뒤쪽의 상표를 뒤집어 보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브랜드를 궁금해하는 것이 옷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거리에 있는 옷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러 가지 옷을 그녀는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사지 않았다. 자신은 백화점이 아니면 옷을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다르구나” 하고 웃어넘기는데, 친구의 목소리가 무겁다. 비싼 옷이 아니면 초라해 보여서 입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무 옷이나 입어도 잘 어울리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싼 옷을 입으면 자신까지 싸게 여겨져서 입을 수 없다는 말을 흘려듣기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시골에서 약방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그녀가 어릴 적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생활을 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마음 졸였던 기억을 가진 채,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했다. 남편 사업이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이제는 누가 봐도 금수저 사모님처럼 보인다는 것을 그녀 자신도 안다.

그러나 시골집에 다시 홀로 되신 엄마를 뵈러 가면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자신이 졸부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고 했다. 매끈한 피부와 콧대 세 보이는 얼굴 아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샤넬을 매고 다니는 자신을 누구도 더 이상 가난한 약방집 딸로 보지는 않지만 이제 샤넬이 너나없이 다 드는 백이 되어버렸다고 가벼운 웃음으로 말했다.

" 이제 샤넬은 누구나 드는 것 같아. 샤넬 앞에 줄 선 사람들 봐봐, 이제 졸부는 샤넬로는 안될 것 같아.

인터넷에는 여전히 언박싱하는 장면이 올라오고 나 같은 사람은 큰 마음을 먹어야 구입하는 샤넬이지만 나는 친구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친구가 스스로를 졸부라 칭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두 대비되는 단어는 어쩌면 부자들이 만든 단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부자인 사람들은 도덕적 품위가 있고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은 천박할 것이라는 편견을 심어주는 단어로 여겨졌다.


" 졸부가 뭐 어때서?"

는 솔직히 졸부가 부럽다고 했다. 졸부는 갑자기 돈을 번 사람일 뿐 거기에 혐오의 뜻은 없다. 그럼에도 졸부와 졸부증후군을 구분하지 않고 쓴다.  졸부는 어떤 노력에 행운이 깃들어야 가질 수 있는 단어이다.  행운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녀의 문제는 졸부가 아니라, 지금의 인생에 비해 누추했던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고 하는 데 있다.

인생 상자에는 행운과 불행이 제각기 들어있고 어느 시기에 무엇이 얼굴을 내밀지 알 수 없다. 친구에게 불행은 먼저 왔고 행운은 뒤에 왔다. 지금 햇빛 아래 있다고 해서 지나온 그늘을 숨겨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저마다 조금씩 불행하고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못이 아닌 것은 숨길 필요가 없다.

상처도 행운처럼 내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이다.

뚜껑형 김치냉장고와 샤넬이 한 집에 있듯이 우리 삶에도 상처와 행운이 함께 깃들어 있다.



깊은 상처는 감추면 낫지 않는다.

밖으로 드러내고 햇빛에 말리면 상처는 아물고 흉터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생긴 흉터는 상처를 이겨낸 증거일 뿐,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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