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으로서의 옷 입기
30년 직장생활을 하며 매일 무엇을 입을지 고민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행사가 있을 때에는 며칠 전부터 입을 옷을 고르고 옷에 어울리는 신발과 가방, 액세서리까지 골라두었다. 중요한 날일 수록 옷에 신경을 썼고 아무리 피곤해도 내일 입을 옷을 코디해 두고 잠들었다. 새 옷을 사면 집에 있는 옷과 맞춰 보느라 밤새는 줄 몰랐고 그 옷이 입고 싶어 출근이 기다려졌다. 옷가게가 하고 싶어 직장을 그만둘까 진지하게 고민했고 연예인보다 옷 많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릴 때부터 나이 차이 나지 않는 고모들과 함께 살아서 화장으로 꾸미고 옷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내 머리를 빗겨주고 설거지를 하던 고모가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보이던 순간을 기억한다. 고모는 콩단추가 쪼르륵 달린 비단처럼 부드러운 검정 벨벳 롱코트를 입었는데 옷감이 어찌나 윤이 나고 부드러운지 얼굴을 비비고 싶은 기분이었다. 감탄하는 나에게 고모는 보란 듯이 롱코트 자락을 펼쳤는데 선명한 빨간 미니스커트 아래 고모의 다리가 하얗게 빛났다. 분명히 할머니한테 혼 날 차림이지만 그 순간 고모가 그렇게 멋져 보였다.
옷을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다 보니 휴대폰 피드에는 연예인이 입은 옷이나 가방이 상위에 올라와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옷과 가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그러나,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몸매와 체형을 과감하게 드러낸 인플루언스들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입고 싶은 옷을 입은 거리의 자유로운 그녀들이다. 무난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내 욕구에 충실한 옷 입기를 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그러나, 주위를 살펴보면 여전히 입고 싶은 옷 대신 늘 입었던 옷으로 자신의 진짜 욕망을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 사람은 연예인이고 인플루언스니깐 괜찮지만 나는 안된다고 생각해 버린다.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나이 때문에 망설이고, 키가 작아서 포기한다.
나 역시 내가 가진 장점보다 단점에 집중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본 적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고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입고 싶은 옷을 입지 못하고 나 자신과 멀어져 본 적이 있다. 우주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작은 얼굴’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젊은 시절 소개팅 자리에서 일어서면 상대방은 언제나 ‘생각보다 날씬하네요’ 하는 반응이었다. 몸에 비해 얼굴이 큰 탓이겠지만 실제로 여성용 캡 모자는 맞지 않아 내 옷장에는 없다.
이 글은 옷에 대한 이야기이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자기 긍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입고 싶은 옷 앞에서 망설이는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어도 얼굴은 여전히 크지만 얼굴이 크니 미소도 크다. 큰 미소를 지을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기에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으로서의 옷 입기를 제안한다. 우리는 옷으로도 나 자신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