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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조이 Sep 13. 2023

쉽게 화내지 않습니다.

화를 내면 내 기분만 나빠집니다.

   백화점에서 잠시 스쳐간 어느 모녀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의류 매장 입구에서 출입을 제지당하는 사람은 중년의 엄마와 스무 살 남짓한 딸이었습니다. 딸은 스벅커피를 들고 있었고 직원은 음료를 들고 입장할 수 없다고 안내했습니다. 혹시 실수로 옷에 음료를 쏟을까 봐 그런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음료를 두고 들어오라는데 따로 음료를 둘만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딸이 당황해하며 커피를 입구 바닥에 내려놓으려는 듯 몸을 숙였다가 다시 일어나는 바람에 딸에게 팔짱을 끼고 있던 엄마도 어정쩡하게 몸을 숙였다가 일으켜야 했습니다.
"바닥에 두면 못 마시잖아." 딸의 목소리는 속상해 보였습니다. 
" 그냥 가자" 톤 높은 엄마의 목소리는 팽팽하게 날이 서 있었습니다. 화가 잔뜩 묻어난 목소리였습니다.


   직원은 매장 수칙을 안내했을 뿐이니 직원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도 거부당한 기분은 들고 화가 납니다. 음료수 반입금지를 하려면 입구에 음료수 홀더를 두거나 " 고객님, 구경하시는 동안 음료는 저희가 잠시 보관해 두겠습니다" 하는 태도였으면 좋았을 테지요. 그런 생각을 차분하게 하기도 전에 화는 불쑥 올라오고 결국 대상 없는 화를 내고 맙니다. 돌아서 걸어가는 모녀의 등에서 화난 기운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왜 그 모녀의 모습을 눈여겨봤을까요? 중년여성의 모습에서 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본 옷을 따라다니며 정리하는 백화점 직원, 물컵을 무례하게 내려놓는 식당 직원, 뻔뻔하게 자기 일을 미루는 동료, 배려 없이 일을 몰아주는 상사, 못 본 척 인사 없이 지나가는 후배,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화나는 상황은 늘 나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화를 내어서 좋아지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화를 내면 문제는 그대로인 채 내 기분만 나빠졌습니다. 


  저는 한해 한해 나이가 쌓일수록 화를 표출하는 기준도 높이려고 합니다. 어지간한 일에는 화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마음먹는 것만으로 마음이 단단해지는 듯합니다. 예전에 500도에서 화를 표출했다면 이제는 510도에서 표출하려고 합니다.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의 발화점은 500도이고 같은 탄소 동소체인 다이아몬드의 발화점은  800도라고 합니다. 한 번에 10도씩 발화점을 높여가면 연필심처럼 부러지기 쉬운 사람도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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