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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조이 Sep 16. 2023

뒤끝 있는 사람이 되기로 합니다

마음에 습지 하나 품고 살아갑니다.

  저는 뒤끝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들도 저에게 그렇게 얘기합니다.

"네가 대인배야, 뒤끝이 없어."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동안 뒤끝이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웬만한 할 말은 다하고 살았으니깐요.

시댁에서도 꼭 해야 할 말은 했고 직장상사에게도 할 말은 했습니다. 속 시원했냐고요, 어느 정도는 그랬습니다. 강적을 만나면 더 세지기도 했고요. 그런 성향은 타고난 기질이어서 이런 것은 내가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할 말을 다했으니 뒤끝이 남아있을 리 없는 거라는 것을 요즘 알게 됩니다. 그런 나를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타인의 솔직함도 요구했었고요. 그러는 동안 뒤끝 없는 호방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겠지요.


 그러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지나간 잘못을 꼼꼼히 기억하여 마치 적어두기라도 한 듯이 말할 때는 먼저 그 기억력에 놀랐습니다. 상처가 되었던 말들은 어찌나 잘 기억하던지요.  저는 지나간 일은 잘 잊어버리고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보이는 것과 실제 제 자신이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순함을 좋게 말하면 투명한 것이지요. 요즘도 할 말 다하는 사람 좋아합니다. 가슴에 담아두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뒤끝 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제가 더 좋습니다.

하고 싶은 말 다 뺃어내지 않는 내가 좋습니다. 이제 앞에서는 좀 참고 뒤로 남겨둡니다. 예전에는  머리로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어야 그 상황을 지나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해되지 못한 감정들을 뒤끝으로 남겨둡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일은 별 것 아닌 일이 되어 희미해지고 어떤 감정들은 기억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때  참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젊었던 날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할 말을 다하고도 집에 와서 이 말을 할 걸 그랬다고 분해하던 사람이었으니깐요.


 나이를 먹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은 마음에 습지 하나 품고 사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결되지 못한 원망과 미움, 질투나 분노들을 마음속 습지에 담아둡니다. 타인을 향한 뽀쪽한 말과 원망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습지에 녹도록 버려둡니다. 그러다 어느 날 습지에서 꽃을 피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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