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자유로운 옷 입기

나를 위한 옷 입기의 즐거움을 누리다

by now nina
나는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을 거예요.
언제까지나 자유롭게
- 72세 패션니스타 린다 로댕-

백화점 근처로 이사를 오고 나니 아무래도 백화점 갈 일이 자주 생긴다. 가깝다는 이유로 늘 편안한 차림으로 다녔는데 약속도 있고 해서 오랜만에 힘 좀 줘서 차려 입고 거울 앞에 서 보았다. 뭔가 어색하다. 옷은 멋진데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옷이 멋져서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옷에 내가 짓눌리는 기분이다. 평소에 입던 만만한 바지와 셔츠로 갈아입으니 비로소 편해진다. '백화점은 원래 차려입고 가는 곳이 아니야 '하면서 집을 나서는 내 모습이 후줄근하다.


대학 시절 나는 옷을 잘 입는 편이었다.


가난한 지방 국립대생들 사이에서 옷 입고 멋 부리기를 좋아하던 내 모습은 눈에 뜨였고 그것은 유치원 교사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발령받은 첫 해 월급을 받아서 대학가에서 후배들을 만난 적이 있다. 후배 한 명이 내게 물어왔다. " 언니, 운동회 할 때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출장 갈 때 탱크톱을 입었다고 하던데 맞아요?" 나는 깜짝 놀랐다. 사실 관계를 떠나서 250km가 떨어진 경북 영양에 있는 내 소문이 어떻게 부산에 있는 후배에게 전달된다는 말인가? 내가 무슨 핵인싸도 아니고 말이다. 출장 갈 때 입 없던 민소매 셔츠는 탱크톱으로 , 출퇴근 때 입었던 미니스커트는 운동회 때 입었다고 소문이 나있었다. 나는 250km를 넘어온 소문이 두고두고 신기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교사의 품위 유지 어쩌고 하는 공문에는 짧은 치마, 노출이 심한 옷에 대한 구체적인 금지 사항이 적혀있었다.

이제는 공무원 같은 옷만 고른다고


사람들 눈에 뜨이고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칭찬받기보다 비난받기 쉽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차츰차츰 움츠려 들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최대한 보호색으로 옷을 입었다. 그즈음 친한 후배와 쇼핑을 갔을 때 "대학 다닐 때 옷 잘 입는 멋쟁이여서 언니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공무원 같은 옷만 고른다"라고 실망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실제로 옷걸이에 정장 재킷이 빼곡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나는 옷을 좋아했고 옷가게 주인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실제로 옷가게를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옷을 가지고 있다. 몇십 년 동안 체중에 큰 변화가 없고 워낙 베이식 한 옷들만 사다 보니 오래전에 산 옷도 그대로 옷장에 걸려 있다. 여전히 누군가는 나를 옷 잘 입는 친구로 생각하고 가끔은 실제로 잘 입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날들에서 나는 경직되어 있었던 것을 느낀다. 몇십 년 동안 타인의 잣대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자기 검열을 하다 보니 이제 시대가 변해 더 이상 옷차림으로 시비를 걸지 않는데도 예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금만 색다른 옷을 입으면 불편했다. 틀 안에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그 이상을 입지 못한다. 이유는 많다. 나이가, 직업이, 날씨가, 얼굴이 , 몸매가, 다 이유가 되었다. 나를 옭아매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내가 타인을 신경 쓴 것이다. 어리석게도.


옷 입기의 즐거움을 위해 벗어버려야 할 4가지 틀


평생 멋쟁이로 살겠다는 내 의지와는 달리 나는 옷이 멋져서 불편해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나를 즐겁게 하는 옷 입기를 해야겠다.

옷 입기가 놀이가 되고 매일 변신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내가 벗어버려야 틀은 4가지이다.

첫째, 나이의 틀이다. 나이가 든다고 갑자기 취향이 바뀌거나 안 입던 스타일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멀리하면 된다. 50살이 되었다고 잘 입던 청바지를 멀리하고 헐렁한 옷만 입을 수는 없다. 나이에 맞게 정해진 옷은 없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을 뿐이다. 굳이 '밀라 논나'라는 70세의 유튜브 패션 니스 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노년에도 옷을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은 많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나이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외국 잡지에서나 보던 짧은 청치마를 입은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정원에서 호수로 물장난하는 모습을 현실에서 내가 만들 수 있다.


둘째, TPO의 틀이다. 시간, 장소, 때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운다. 사무실 복장과 주말 복장이 달라야 하고 교사답게 입어야 한다고 은연중에 세뇌당해왔다. ~답게라는 말은 틀일 뿐이다. 장례식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가서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만 아니라면 TPO는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결혼식, 상견례, 면접 등에 어울리는 복장이 따로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데, 다행히 인생에는 그런 일들이 별로 없다. 시간, 장소, 때에 맞는 옷보다 먼저인 것은 나에게 맞는 옷이다. 내가 입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옷이 최고의 옷이다.


셋째, 편안함의 틀이다. 이것은 나이나 TPO보다 벗어나기 힘든 틀이다. 한번 편한 것을 찾게 되면 다음에는 조금만 불편해도 견디지 못한다. 이것은 비단옷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편안함은 마약 같아서 한번 젖어들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사실 패션의 즐거움을 누리려면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익숙하고 편한 것만 쫒다 보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지 않는다. 약간만 불편해도 입지 않으려 하고 익숙한 옷으로 갈아입게 된다. 옷이 편하기를 바라기보다 어떤 옷을 입더라도 내가 옷을 편하게 느끼면 된다.


넷째, 패완얼의 틀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을 거부한다. 자신의 얼굴에 맞는 옷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다 이상해 보이는 날이 있다. 이 옷을 입어도 저 옷을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다. 멋지고 화려한 옷을 입었다가 내 얼굴에 맞지 않는다고 벗어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옷 입기의 즐거움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차라리 그런 날은 우스꽝스러운 차림을 즐기는 쪽으로 마음을 먹고 과감해진다. 다음 날도 옷 입을 날이 있으니 오늘 어울리지 않는 것은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울리지 않는 옷도 즐겁게 입는다. 입다 보면 어울리게 된다.

한마디로 나를 즐겁게 하는 옷 입기는 세상의 틀이 아닌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옷을 입는 것이다.




화창한 봄날 오후, 호텔 커피숍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들어오셨다. 할머니들은 내 앞의 창가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으셨다. 모두 멋쟁이 할머니들이셨다. 그중 한 할머니의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베이지 주름 스커트에 청색 금장 단추 재킷 그리고 적당한 굽이 있는 빨간 단화를 신으셨는데 말 그대로 'ageless"였다. 여고생이 입는다 해도 어울릴 차림을 할머니는 멋지게 소화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나이가 들어야 할지 모델을 찾은 느낌이었다. 자신을 단정하게 관리하고 아끼는 모습이 옷차림에서 드러나 보였다.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자신을 가꾸는 모습에서 품격이 느껴졌다. 매력 있게 나이 들기 위해 옷 입기는 좋은 방법이었다.


50대는 옷 입기 참 좋은 나이이다. 나에게 타인들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 역시 타인의 눈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입으면 된다. 나를 즐겁게 하는 옷 입기는 내 자유를 구체적인 형상으로 보여주는 버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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