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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fulmito Sep 12. 2023

병도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

올해 유난히 병원 신세를 많이 지는 것 같은 것은 그냥 기분 탓인가?


10년 이상 근무하면서 병가라고는 임신과 코로나 외에는 전혀 없었는데, 휴직 중인 올해는 몸살이 났다 하면 며칠을 누워 일어나질 못한다. 출근할 적엔 꼭 주말에만 아프고 주말을 끙끙 앓고 나면 월요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출근을 하곤 했었다.


돌이켜보니 병도 정신력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임감으로 나도 모르게 아픈 몸을 타일러 주말까지 아픔을 미루고,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몸을 타일러 출근을 시켰던 거구나. 주중에 너무 힘든 날도 기어이 수업을 다 해내고 조퇴를 한 후 링거를 맞으러 병원에 갔다.


정신력으로 몸을 억지로 일으키지 않는다면, 3~4일을 앓으며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였구나. 그동안 병은 눈치가 빤하여, 누울 자리가 없어 다리를 뻗지 못했던 거였다.


돌아보니 아파도  병이 나면 자연스럽게 나을 때까지(물론 약도 먹으며) 쉬어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병이 누울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세상 태평한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큰 병이 걸리면 모든 일을 멈추고 누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니, 이 모든 게 호화스러운 불평이다.


올해는 나뿐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 갈 일도 이렇게 많은가 불평을 해댔다. 큰 아이가 손가락 골절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끝나기도 전에 둘째가 손가락을 접질려 바쁘게 병원을 오갔다. 둘째가 감기로 병원 신세를 시작하여 끝나기 전에 첫째가 몸살이 나고 첫째가 끝나기 전에 둘째가 독감에 걸렸다. 그것도 나의 코로나가 시작이었다.


둘째 독감 회복 확인서를 떼서 학교를 보내고 나니 어느새 가을이구나 생각한다. 가을에는 조깅을 시작해야겠다, 했었다. 유일하게 하나 있는 운동복 바지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딸아이의 학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섰다.


내 평생에 첫 조깅이다. 걷기에는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자신감이 있지만 달리기라면 말이 달라진다. 평생 내 의지로 달려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학교 체육 시간이  타의에 달려본 마지막일 것이고.


야심 차게 운동앱을 켜 '달리기'기록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천천히 달리는 자세를 만들어 보지만 달렸다고 하기에도 뭐 한 타이밍에 힘들다. 어차피 달리고 걷기를 반복할 생각이었다. 나 스스로도 내 꼴이 우습다. 이걸 과연 조깅이라고 불러도 될 것인가.


집에서 가까운 공원에 도착했다. 가까운 곳에 큰 공원이 있어 다행이다. 한 바퀴를 걷고 달리기를 반복하는 동안 경보하시는 할머니도 못 따라잡았으니 나의 달리는 꼴이 얼마나 어이없는가. 하지만 평생에 첫 조깅을 했다!!


50분 동안 4.6kg를 움직였으니 조깅이라고 부르면 안 될 것 같지만, 이제 시작이니 조깅이라고 우기기로 한다. 내 평생 가장 하기 싫은 것을 시작했는데 처음이라는 단어가 나를 들뜨게 한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이후 수영을 배웠고,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어반스케치를 시작했고, 야구를 보기 시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취미들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조깅이 더해진다는 사실에 무척 신이 난다.


조깅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달리기를 한 다음날 다리가 아프다. 내 몸은 이것을 달리기로 인식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난다.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군.


하루 쉬고 내일 또 달리러 나가야지. 딸아이의 체육복 바지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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