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주에서 사 온 오메기떡을 친정에 갔다 드리기 위해 오늘은 친정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늘 걸어서 우리 집에 오가시는 엄마처럼 오늘은 내가 걸어서 간다. 그 엄마에 그 딸이다. 가족은 닮을 수밖에 없나 보다.
웬일로 여행에서 사 온 선물을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신다.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이유 중 하나는 가성비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사 와도 비싸면 엄마에게는 광속 탈락이다. 생각해 보니 선물 사 왔는데 가격 물어보는 거 반칙 아닌가? 아무렴 어떤가. 까다로운 우리 엄마 맘에 들었다는 게 중요하지. 어린 시절 아빠가 큰맘 먹고 사 오신 과일 바구니를 보고 엄마가 하도 잔소리를 하셔서 결국엔 아빠가 과일 바구니를 집어던지신 이후로 아빠는 늘 엄마에게 현금만 건네신다. 그때는 먹고살기 힘들 때였으니 엄마의 잔소리도 이해가 되고, 좋은 것 엄마에게 한 번 주고 싶으셨던 아빠 마음도 이해는 된다. 어쨌든 십 대부터 지금까지 30년간 "이런 거 좀 사 오지 마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이제야 깨달은 것은 가성비 좋은 아빠 입에 맞는 간식거리를 사 와야 한다는 거다. 엄마가 필요하실 만한 것들을 무수히 사다 날라 봤지만 어느 하나 엄마 마음에 드시는 게 없었다. 엄마는 늘 필요 없으시다고 한다. 심지어 "네가 사 오는 복숭아 맛 없대이. 절대 사 오지 마래이." 하며 복날 늘 사가던 복숭아도 퇴짜를 맞았다. 급기야 아빠에게까지 "내 옷은 내가 사 입을게."라는 말을 들었지. 아빠도 결국 엄마를 닮아버리셨다. 이런 형편이니 엄마 마음에 든 오메기떡은 얼마나 큰 성공인지 모른다.
제주여행을 하다 보니 예전에 엄마가 제주 올레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애들이 어려서 두고 가기도 힘들고 애들을 데리고 올레길을 걷기도 힘들어서 미뤄두었는데, 이제는 아이들 맡겨 놓고 2박 3일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흔쾌히 yes 해준다. 덕분에 신나게 엄마에게 제주 여행을 제안했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 안 갈래.' 하신다. 힘이 쭉 빠진다. 엄마는 자식들이 해 준다고 하는 건 늘 싫다 하신다. 친구들은 그게 진짜 거절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우리 엄마의 경우에는 레알 거절이다. 당황해서 이유를 여쭸더니 아빠랑 매일 파크 골프 치러 가시는 게 더 재미있으시단다. 그렇다면 억지로 설득할 수는 없다. 그래도 모처럼만에 나도 뿌듯하고 폼나게 효도 한 번 하려 했는데 김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고집 센 우리 엄마를 설득할 방법이 없다.
제주 호텔에서 한라산 뷰를 그리고 있으니 남편이 "장모님 댁이랑 뷰 비슷하네." 했었다. 그러고 보니 한라산 아래 올망졸망 모인 건물들이 대구 앞산 아래 옹기종기 자리 잡은 주택들과 스케일만 다를 뿐 똑같이 닮아 있었다. 대구 가면 친정집에서도 그림 한 장 그려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림 도구는 오늘도 역시 내 가방에 있고.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앞산이라 불리는 우리 집 뒷산을 먼저 그려 넣고 아래에 보이는 집들을 성실하게 차근차근 그려 넣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하시는 앞산 뷰다. 내가 대학 졸업하고 이사 왔으니 여기 사신 지도 20년이 되셨다. 중간에 이사를 갈까 고민도 하셨지만 이 뷰를 포기하지 못해 이사를 포기하셨을 만큼 엄마 아빠는 이 뷰를 사랑하신다. 계절 따라 변화하는 산의 모습도, 밤이 되면 켜지는 가로등 아래 야경도 모두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들이다.
멋지게 그려서 선물로 드리고 오고 싶었는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큰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더니 시간은 너무 많이 걸리고 가까이에 있는 큰 산을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선물은 다음에 다시 그려서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