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여행을 단칼에 거절하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야, 뭐 걸으러 제주까지 갈 꺼 있나? 니 걸으러 갈 때 엄마도 같이 가면 되지.”하신다. “어... 엄마, 나는 카페 들어가서 그림 그릴 껀데 백신 패스 때문에 우리 같이 카페도 못 들어가는데요?” 엄마는 카페 음료를 드시지도 않으시니까 엄마랑 같이 카페에 가는 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같이 앉지도 못 하니까. 그래도 일단 같이 나가 보기로 했다.
대구 어반스케쳐스 전시회에 액자를 내러 가야 해서 1호선 지하철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액자를 넣은 종이 가방을 들고 지하철역까지 30분을 걸어간다. 거추장스러운 종이가방을 들고 걸어가면서 엄마가 이거 보면 또 바로 ‘내가 들게.’ 하실 거라며 혼자 웃는다. 내년에 칠순이 되시는 엄마는 마흔네 살 딸을 여전히 소녀로 아시는 게 틀림없다. 예상되는 엄마의 대사에 반박할 대사를 미리 준비해 놓는다. 역시나 지하철에서 나를 보시자마자 손을 내밀며 “그거 액자라? 이리 줘.” 하신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엄마, 남들이 보면 나 욕해. 엄마가 들고 있는 것도 내가 들어야 할 판이야.” 하니 엄마도 웃으신다.
액자를 제출해야 하는 도서관이 내 첫 근무지였던 학교 바로 옆에 있는 곳이다. 발령받고 운전을 하기 전까지 지하철로 출근했었다. 오랜만에 이 길을 걸으니 추억 돋는다. 퇴근 후에 동료 선생님들과 떡볶이를 사 먹던 시장을 지나간다. 세월을 따라 옛 모습은 사라지고 눈에 익은 가게 하나 없지만 왠지 친근한 길이다. 운전을 시작한 후에는 초보 운전으로는 빠져나오기 힘들어 고생했던 복잡한 골목길을 거의 20년 만에 다시 와 걷고 있다. 마치 엄마와 추억 여행을 온 것 마냥 그때 그 시절 이야기들을 읊는다.
엄마가 딸을 만나는 목적은 수다가 아닐까. 여자들의 만남이 대부분 그렇기는 하지만, 여행에 큰 관심 없으신 엄마는 제주의 올레를 걷건 대구의 길을 걷건 아무런 상관이 없으시다. 어떤 길을 걷는지는 엄마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만나서 무엇을 하느냐도 엄마에겐 관심 밖의 일이다. 예전에 홋카이도 여행을 함께 다녀오신 후에 두고두고 추억하시며 좋아하셨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또다시 그런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은 건데, 엄마는 마음을 움직이시지 않는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고 싶은 건데, 엄마는 그럴 기회를 잘 주시지 않는다. 5년 전 홋카이도 여행에 흔쾌히 따라나서신 이유도 아이 둘 데리고 나 혼자 해외여행을 가기는 불안하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엄마가 하고 싶으신 일에 의해 움직이시기보다 엄마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움직이신다. 그것이 그 세대에 엄마가 길러진 방식이라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엄마는 신경 쓰지 말고 카페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라고 하신다. 엄마는 카페에 따로 앉아 유튜브를 보면 된다고 하신다. 그러시더니 막상 카페 앞에서 내가 그림 그리는 동안 그 동네 산책하시겠다고 또 길을 나서신다. 하지만 이 추운 날씨에 이미 같이 한참을 걸었는데 어떻게 엄마를 밖에 두고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는가? 엄마는 카페에 들어가서 편하게 그림을 그리라고 내 등을 떠미시지만 마음이 편할 수 없는 내게 눈에 들어오는 카페도 없다. 이곳저곳 카페를 찾다 보니 너무 많이 걸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많이 되었고. 오늘은 그림은 못 그리겠다고 엄마와 지하철로 돌아온다.
아무래도 어반스케치와 2시간 걷기의 내 방학 계획을 엄마와 매일 동행하기는 힘들 듯했다. 엄마에게 매일 같이 가기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며 일주일에 하루 요일을 정하자고 했더니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니 혼자 맘대로 다녀. 요일까지 정해서 같이 나올 거 뭐 있냐." 하신다. 아고.. 못 말리는 우리 엄마. 조금이라도 자식에게 폐를 끼칠 것 같으면 바로 발을 빼신다. 일주일에 하루 정해서 같이 산책해도 되는 거지. 자식에게 효도하는 만족감도 큰 거라고, 엄마가 무언가를 받는 게 자식들에게도 행복을 주는 거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네가 행복하면 엄마도 행복한 거’라는 엄마의 레퍼토리가 반복될 뿐이다. 결국엔 엄마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엄마와 함께 걷는 대구 올레 여행은 하루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나는 나이 들어서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효도받을 거’라며 엉뚱한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