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놀러 온다고 했다. 늘 함께였던 쌍둥이 내 동생은 내게 가장 좋은 친구다. 하지만 박사과정을 하면서 애 둘을 낳아 키우고 천문연구원이 된 동생은 늘 바쁘다. 잠을 쪼개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 동생과 자주 만나기도, 전화로 수다를 떨기도 쉽지 않다. 동생에게 방해가 될까 봐 먼저 만나자고 하는 일도 잘 없다. 동생이 여유가 될 때 나를 찾아 준다. 아니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언니를 찾아 준다. 아이들 충분히 키워놓고 여유로워지면 옛날처럼 늘 함께하며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돌아갈 거라 믿고 바쁜 세월을 기다린다.
쌍둥이 동생과 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수다를 떨고도 밤늦도록 엄마에게 '그만 자거라'를 수없이 들었지만, 쌍둥이들만 갖는 특별한 어려움도 있었다. 물론 어릴 적엔 그 어려움의 근원을 고찰하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눌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에 각자만의 콤플렉스를 만들어 가며 비교의식에 강하게 눌려 있었다. 어딜 가든 칭찬이 자자하던 엄마의 자랑스러운 두 딸이 그런 콤플렉스가 있다는 건 엄마는 상상도 못 하셨으리라. 동생은 언니와 다른 대학을 가겠다며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지원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그제야 스스로를 돌아보는 나름의 사춘기를 겪은 후, 어느 날 동생과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엉엉 울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 없다는 진리를 우리는 몸소 제대로 배웠다. 덕분에 지금도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당당하게 서로를 응원할 수 있다.
동생이 점심때 놀러 온다고 하면 청소 좀 해 놓고 점심 준비라도 해야 될 텐데 동생이 오기 전에 그림 그리고 오려고 일찍 집을 나섰다. 아무래도 어반 스케치에 미친 것 같다. 엉덩이가 근질거려 하루도 집에 있질 못하는 나는 이제 손까지 근질대서 하루도 그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산책을 하며 여기저기 그림 그리기 좋을 곳을 눈에 담아 두었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 망설이거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30분 거리의 투썸 플레이스. 그곳이면 2시간 안에 그림 그리고 돌아오기 적당하다.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씩씩하게 걸어 목적지를 향한다. 이른 아침 카페에는 아무도 없다. 제일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다.
따스한 햇살이 창가로 들어온다. 그림을 그리고 있던 자리에 빛이 너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그림을 그리던 중에는 자리를 옮길 수 없다. 불편해도 참는다. 바깥은 1월의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 창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내 손을 비추는 햇살은 여름이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을 간판들을 구경한다. 여기 이런 게 있었구나. 시간이 넉넉지 않아 채색을 할지 말지 망설이다 그림자만 넣어야지 하며 물감을 칠한다. 그렇게 시작된 채색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엔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약속시간을 정해 놓고도 미리 나서는 법이 없다. 시간 맞추려 급하게 걷고 뛰는 건 80이 되어도 여전할 것 같다.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점심 준비를 하려는데 엄마가 김밥을 싸 오신다니 간단히 어묵만 삶기로 한다. “야... 아들만 있는 사람은 외롭겠어. 아들이면 엄마 오라고 불러주겠나.” 하시며 손 크신 엄마가 김밥을 잔뜩 싸 들고 오셨다. 엄마가 조금만 해 오실 리가 없다. 엄마는 아마 100살이 되어도 손이 작아지시는 일은 절대 없으실 거야.
조카들이 오면 우리 아이들은 동생들과 놀아주는 일을 맡는다. 조금 더 어릴 때는 서로 사촌동생이랑 놀겠다고 싸움이 나곤 했지만 이제는 사춘기에 접어든 의젓한 형, 누나가 되었다. 그래도 동생들이 좋아할 만한 보드 게임을 가지고 나와 가르쳐 주기도 하고 놀이터도 따라 나가는 착한 사춘기 아이들이다. 우리 조카들도 우리 아이들을 깍듯이 따른다. 아이들이 잘 노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부른 게 부모인데, 사촌 형제들이 이렇게 모여서 예쁘게 놀고 있으니 외할머니도, 엄마도, 이모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물론 안 먹을 수는 없다. 엄마가 싸 오신 김밥을 모두가 야무지게 먹는다. 우리 엄마가 안 먹어도 배부른 순간은 엄마가 해 주신 음식을 자식들이 맛있게 많이 많이 먹을 때다. 오늘 꼬맹이 네 녀석이 효도를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