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3대 산책 명소를 꼽으라고 하면 대구수목원, 두류공원, 수성못을 들 수 있지 않을까? 같은 길, 같은 장소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대구 토박이로 대구에 40년을 살면서 수없이 걸었던 추억의 장소들이다. 많은 이들에게 그렇게 사랑받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계절 따라 달라지는 모습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숨차지 않을 정도의 산책하기 딱 좋은 길이의 코스들이다. 도시에 살면서 가끔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기회를 갖게 해 주는 곳들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운동을 위해 가까운 두류공원 산책을 자주 한다. “두류공원 걸으러 한 번 가자.” 하는 게 우리 동네 엄마들 사이에는 “다음에 밥 한 번 먹자.”에 맞먹는 인사말이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18번 산책로이기도 하지. 인기 많은 산책로답게 언제 가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이 둘레길을 걷고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고, 조깅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바퀴를 걷다 보면 조깅하는 사람들을 몇 번씩을 마주치기도 한다.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서점에 다녀오느라 오늘 걷기 운동은 놓쳤고, 밤에 혼자 나가서 걷기도 쉽지 않다. 이때 “시간 날 때 두류공원 한 번 가요.”하던 동네 친구가 생각난다. 저녁 먹고 겨울 해가 이미 저문 차가운 시간, 약속 장소로 나갔다. 나름 서둘러 일찍 나갔지만 늘 일찍 와서 기다리는 친구는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들이 3살 때부터 알게 되어 아이들 데리고 놀러 많이 다녔었는데, 약속 장소에 나가면 한 번의 예외 없이 간식 잔뜩 챙겨 미리 나와 있곤 했다. 늘 아이들 데리고 같이 다녔지만 이제 아이들은 훌쩍 자라서 엄마들을 따라다니지 않는다. 물론 이제 엄마들끼리만 만나는 게 편해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없어야 마음 놓고 아이들 얘기도 실컷 할 수 있기 때문이지.
직장 다니는 엄마들에게는 동네 친구가 많지 않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는 엄마들 모임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직장 다니면서 모임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고 모임에 나갈 마음도 별로 없었다. 친구 관계는 아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었고, 새로운 모임에 자주 나갈 만큼의 여력도 없었다.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인간관계를 넓혀가는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다. 내가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향적인 친정엄마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다. 퇴근 후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 나가면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엄마에게 동네 사람들을 소개받곤 하는 식이다. 오늘 만난 친구가 아마 유일하게 내가 사귄 동네 친구인데, 엄밀히 말하면 동네에서 사귄 친구는 아니다. 교회에서 만나 친해졌는데 아이들도 나이가 같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을 뿐이다.
어쨌든 동네에 친구가 있으니 좋다. 이렇게 갑자기 연락하더라도 함께 산책하며 수다를 떨 수 있으니 말이다. 엄마들이 만나면 가장 큰 화제는 늘 아이들 이야기다. 어떻게 키워야 할까 나름 고민하며 함께 답을 찾아가기도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다른 집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되면 위로받기도 하는 법이지. 사춘기 아이들을 키울 때는 엄마들의 연대가 더욱 깊어진다. 아이들로 인해 친구가 되었지만, 엄마들의 우정이 더 오래 이어지는 경우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진로에 대한 고민도 같이 나눈다. 아들이 야구를 시작하기 전에 다양한 정보를 준 사람도 이 친구다. 아들이 처음 야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이 친구네 영향이었고. 아들이 진지하게 야구를 하고 싶다고 얘기한 후 내 아이 일처럼 같이 공감하고 격려하며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부모의 역할도 계속해서 달라지니 익숙해질 수가 없다. 어느 한순간도 쉬운 때는 없는 같다. 부모로서 자라 가기 위해서는 함께 고민할 친구들이 필요하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늘 한결같은 친구가 있어 감사하다.
우리 둘 모두에게 익숙한 길이라 트랙을 그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두류공원을 한 바퀴 돌고 부지런히 걸어 우리 동네로 돌아온다. 밤이라고 둘 다 잔뜩 껴입고 나왔는데 생각보다 따뜻하다. 서로에 대한 지지와 격려도 우리를 훈훈하게 하는 데 한몫한다. 겨울밤 산책이 전혀 춥지 않다.
아들의 친구이자, 친구의 아들이 학원에서 올 시간이라 집 앞에서 친구와 함께 기다리며 남은 수다를 마무리한다. 3살 귀염 뽀짝 하던 녀석이 청소년 티를 풀풀 풍기며 노란색 학원버스에서 내린다. 많이 컸구나. 수고 많다. 모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