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씩씩하게 이별합니다

by joyfulmito

오랜만에 하얀 셔츠에 꼭 맞는 원피스를 받쳐 입었다. 평소 하던 화장에도 조금 더 공을 들여본다. 얼어 죽어도 코트 입어야 한다며 가디건 하나를 입고 코트를 걸쳐 입었다. 잠시 망설이다 운동화를 신고 여전히 검은색 백팩을 등에 멘다.


오늘은 차를 가지고 갈까 고민하다가 여전히 걸어서 출근을 한다. 하지만 아침에 감은 덜 마른 머리가 바람에 날려 엉망이 될까 봐 머리카락을 잡고 걷는 내 모습이 참 우습다.

3년을 키운 아이들이 졸업하는 날이다. 어젯밤 문득 잠이 깨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1년 후에는 보내는 것이 교사의 일이지만, 이 아이들을 보내려니 마음이 뭉클하다. 시골처럼 작은 학교에 와서 옆집 숟가락 개수도 세릴 것 같은 가족 같은 관계를 나는 평생에 처음 경험해봤다. 미래의 내 교직경력까지 포함해서도 가장 행복한 3년 일거라고 자부하는 시간을 함께 보낸 아이들이다.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슴 깊이 이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예뻐했다는 걸 이 아이들도 알고 있을까.


이 얘기를 하다 울컥하고 말았다. 맹숭맹숭 말똥말똥하게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에 순간 염려가 비친다. 아이들의 그 눈빛에서도 나는 '엄마가 실수할까 조마조마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 버렸다. 아이들을 걱정시킬 수 없어 씩씩하게 웃으며 "자, 졸업장 받자." 했다.


코로나로 인해 부모님도 참석하지 못하실 뿐 아니라 강당에 함께 모이지도 못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교실에 앉아 방송으로 졸업식을 시청한다. 졸업식이 빨리 끝나고 놀러 갈 생각에 신이 난 철없는 아이들이지만 졸업장과 꽃을 하나하나 전해주며 개인 사진도 찍게 했다. 마지막으로 교실 앞에서 단체 사진도 하나 찍었다. 앨범에 넣기 위해 열심히 찍던 단체 사진과는 다르다. 어느 누구 하나 토 달지 않고 얼굴을 숨기지 않고 활짝 웃으며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었다. 축하해. 다 같이 박수를 치며 마지막 종례를 끝냈다.


오늘은 이별의 시간이 이어진다. 정년퇴직을 하시는 교장선생님과 학교를 옮기시는 선생님들의 인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울음바다가 될까 위태위태하다. 돌아보면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다. 평생 만날 좋은 사람들을 여기서 다 만난 것 마냥 이별이 힘들다.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었던 것도 서로가 좋은 사람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언니처럼 챙겨주셔서 감사해요'라는 편지를 남겼던 부장님께 '우리 마음이 통했나 봐요. 나도 늘 동생같이 편하게 수다도 떨고 부탁도 했었는데.'라는 답이 왔다. 그동안 우리는 정말 가족이었나 보다.


보낼 사람들을 보내고 허탈한 마음으로 함께 남는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었다. 늘 내 편이 되어주시는 선배 선생님들께 이번에는 꼭 내가 살 꺼라 우기며, 디저트를 주문했다. 많은 가족들을 떠나보냈지만 남은 가족들이 있어 다행이다. 올해 변화되는 환경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 시간을 함께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 여전히 든든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림을 그릴 카페를 찾는데 너무 배가 부르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겨울에는 도저히 없다. 더군다나 퇴근길에 있는 그림 그릴 만한 모든 카페를 클리어 해 버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봄이 되면 야외에 앉아서 그리기 좋은 장소를 열심히 물색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버렸네. 내일부터 다시 봄방학이니 또 새로운 곳을 탐색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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