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두 번 미용실에 간다. 미용실 가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 년에 두 번이 내가 생각하는 머리 하기 적당한 때이다. 파마가 아직 괜찮다고 더 기다렸다가 여유로운 시기를 놓치고 나면 바쁜 학기 중에 마음에 안 드는 머리를 마냥 참아야 한다. 미용실 가기는 건강검진이나 치과진료처럼 내게 방학 중 꼭 해치워야 할 숙제다.
최근 몇 년간 다닌 두 미용실 중 어디에 갈지 고민하다가 동네 미용실을 두고 좀 더 먼 곳에 예약을 했다. 두 미용실 모두 머리는 마음에 들고 둘 중 어디에 갈지 고르기 힘들길래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의 미용실을 택했다. 미용실 다녀오는 길에 오는 걷기 분량을 채우겠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다.
예약해 둔 시간 1시간 전에 집을 나설 계획인데 엉뚱하게 걸려온 전화로 급히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집에서 잘 열리지 않는 학교 나이스 시스템을 작동시키느라 늦어졌고, 오늘도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급히 걸어야 한다. 참 사람이 한결같다 싶어 웃음이 난다. 네이버 지도에 52분이 걸린다는 곳을 50분 앞두고 나왔지만 10분 전에 도착을 해 버렸다. 어떤 일이나 반복하면 숙련이 되나 보다. 처음 며칠 동안 아프던 다리도 멀쩡할 뿐이다.
미용실에 도착해 머리 하는 동안 읽으려고 넣어온 책을 꺼냈는데, 엉뚱한 다이어리가 툭 튀어나온다. 책을 넣어 온다는 게 이렇다. 순간 허탈하고 어이없지만 글을 쓰기로 한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넘쳐나는 세상이니 나의 실수도 쉽게 용서된다. 머리를 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게 느껴진다. 기술이 좋아져서 파마하는 시간도 많이 단축된 느낌이다.
미용실에서 나와 그 근처에 있는 수제 버거집에서 햄버거를 주문했다. 길을 걷다 보면 맛집이 많이 보여 먹고 싶은 것, 사가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이 버거 집도 지난번에 이 앞에 지나가며 사고 싶은 걸 한 번 참았지만, 이번엔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햄버거 사서 버스 타고 갈까 했지만 버스 타고 가는 시간도 30분이라니 역시 걸어가기로 한다.
집에 와서 가족들과 햄버거로 점심을 먹고 이제 어디에 그림을 그리러 갈까 또 고민한다. 걷기는 이미 끝냈으니 오랜만에 카페는 차를 타고 가야겠다. 아이들은 친구와 약속이 있다니 결국 이번에도 홀로 집을 나선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이렇게 질리지 않다니. 홀로 커피를 한 잔 시키고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랐다. 창가에 앉아 눈앞에 보이는 폐공장과 주변 건물들을 성실하게 펜으로 담는다. 사진으로 찍어서는 별 것 없는 풍경들을 그림으로 만드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림 같은 풍경을 매일 볼 수는 없는 도시인들에게 매일 보이는 평범한 풍경을 그림 같은 풍경으로 바꾸어 주는 일이지 않은가. 그림이 마음에 드는 날도 있고 아쉬운 날도 있지만 결과물보다 과정이 신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제출을 해야 하는 것도, 평가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야말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그림을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도 예쁜 해가 지는 모습이 보인다. 돌아오는 길 내가 좋아하는 일몰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 찍어둔 일몰 사진이 학기 중 바쁜 어느 날 퇴근 후 그림이 되며 오늘을 떠올리게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