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따로 또 다 같이

by joyfulmito

개학은 일주일 앞두고 마지막까지 놀 계획을 야무지게 세워두었는데, 벌써 '방학 동안 잘~ 놀았다.'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잘 놀아도 늘 방학이 끝나는 것은 아쉬운 법인데,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빨리 교사 그만두고 여행 다니며 그림 그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렇게 개학을 기다리는 것 보니 내 일을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는구나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남은 방학을 가만히 집에 앉아 쉴 리가 없다. 끝까지 열심히 놀아두는 게 늘 내가 개학을 준비하는 방식이다.


다음 주에 글램핑 1박 2일 예약해두고 내일은 아이들과 전주 한옥 마을에 가기로 했다. 논산 선샤인 랜드에 갈 생각이었는데 최근에 본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촬영지가 전주라는 말에 바로 마음을 바꿔 버렸다. 어쨌든 여행을 가면 식당에도 가야 하니 또 신속항원 검사를 해야 한다. 너무 지겨워서 그냥 한옥 마을에서 음식들 테이크 아웃해서 차에서 먹자고 했더니 딸아이가 실망한다. 음식에 진심인 딸에겐 중요한 부분이다.


가기 싫은 마음에 미적거리다 11시 반에 집을 나섰더니, 여전히 줄이 길 뿐 아니라 지금 줄 서면 오전 중에 검사 못 받는다고 2시 반에 다시 오라고 한다. 결국 검사도 받지 못하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 점심 먹고 또다시 3시쯤 도착했는데... 하이고야... 장사진이다. 내일 점심 한 끼 사 먹겠다고 이 줄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를 날려버리고 싶진 않다. 내일 다시 오더라도 일단 발걸음을 돌렸다.


그림이나 그리러 가자. 사실 우리 동네에 웬만한 카페에서는 다 그림을 그려서 가까운 곳엔 갈 곳이 많지 않다. 남아 있는 카페가 있는지 지도 앱을 켜고 갈 곳을 찾는다. 열심히 걸어갔지만 그 카페가 문을 닫았다. 또다시 검색을 하고 찾아갔지만 이곳 역시 문이 닫혔다. 요즘처럼 장사 안 되는 시절에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들은 유지하기 힘들 테다. 인테리어도 이렇게 예쁘게 해 놨는데 버티질 못했나 보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다행히 문이 열렸다. 풍경이 마음에 드는지 자리가 어떤지 더 견줄 수 없다. 오늘은 여기 아니면 그림 그릴 곳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손님이 없어서 아무 자리나 마구 고를 수 있다. 구석 자리에 앉으니 아주머니께서 난로도 가까이에 놓아주신다. 젊은 알바생이 아닌 주인아주머니께서 운영하시는 이런 작은 카페에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한 보살핌에 기분이 좋다.


어릴 적 듣던 친숙한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요즘도 저 노래들을 듣는구나 싶으면서도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부르던 노래들에 옛날 생각이 나서 슬며시 미소를 띤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내게 열심히 가르쳐 주던 귀여운 친구가 떠오른다.


최근에 여행을 다니면서 예쁜 풍경과 건물도 잔뜩 찍어왔는데, 사진을 보고 그리는 건 영 손이 가지 않는다. 물론 개학을 하고 낮에 밖에서 그릴 시간이 없을 때 찍어둔 사진들을 하나씩 꺼내 그리며 아쉬움을 달래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직 여유로우니 내 눈앞에 풍경을 두고 생생하게 그려낸다. 멋진 풍경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기분이가 좋으니까.


늘 그렇듯 혼자서 재미나게 놀고 들어와 아이들에게 "뭐하고 있었어?" 묻는다. 아이들도 이제 제법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할 일들을 섞어 가며 시간을 짜임새 있게 사용한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집을 비우는 시간도 필요할지 모른다. 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그렇긴 하지만 학교 다녀와서 아무도 집에 없으면 괜히 좋았거든. 이제 각자 혼자 설 때가 되기도 했지.


내일은 또 다 같이 놀러가자구.


@하루카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26. 숙제 끝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