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딸이랑 서점 데이트 하기

by joyfulmito

남편과 아들은 각자 스케줄이 있어 외출을 한 주말 오후, 딸과 둘이서 집에 남았다. "우리는 뭐 할까?" 가만히 집에서 쉬는 날이 없는 엄마의 질문이다. 아들이 없는 날 서점을 가기로 했다. 물론 나도 서점 나들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딸이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동안 나는 근처 카페에서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나도 책 읽는 거 좋아하는데 서점 가는 건 왜 안 좋아하는지 모를 일이다. 집에 더 꽂아둘 곳이 없어서 내가 읽을 책은 주로 빌려 읽는 편인데, 도서관에서 흥미가 있는 책을 아무렇게나 뽑아오는 편이 내게는 훨씬 재미나다. 신간을 살피는 재미는 아직 알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기보다 근질대는 손을 위해 그림을 그리러 갈 생각이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내키지 않으면서도 엄마의 루틴을 이해하는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를 따라나선다. 집 밖에 나오니 생각보다 춥다. 역시 오늘도 기온을 체크하지 않았군. 얼른 집으로 뛰어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지하철역까지 걷는 동안 딸은 엄마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춘기라 불리는 중학생이 여전히 엄마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이 고마운 이야기에 집중해 주지 못해 딸을 실망시키는 일도 많다.)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양하게 알아본 흔적들이 기특하기도 하다. 엄마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스스로 찾아보는 듯하다. 때로는 엄마의 적당한 무관심이 아이를 적극적이게 만들기도 한다.


친구들이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는 데 반해 상대적으로 더 큰 자유를 누리는 딸 자신의 일상에 대한 만족감을 표한다. 기쁘면서도 한편 걱정이 되는 것이 엄마의 솔직한 마음이다. " 엄마는 지금 자유롭게 보내는 시간이 나중에 힘이 될 거라 생각해. 실컷 놀고 나면 힘든 시간이 왔을 때 '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괜찮아. 실컷 놀았잖아.'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엄마의 노파심 섞인 말에도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아이에게서 진지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아이는 이제 구세대가 되어 가는 엄마에게 요즘 유행하는 것들에 대한 정보도 성실하게 전해준다. 이제는 엄마와 세상을 이어주는 역할이 딸의 몫이 되었다. 언젠가 성실하게 아이를 가르쳤던 것처럼 이제는 성실하게 배울 차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서점 앞에서 헤어져 미리 찾아두었던 카페로 걸음을 옮긴다. 카페가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한 후 다시 같은 과정을 한 번 반복한 후에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아냈다. 한옥 뷰가 마음에 쏙 드는 조용한 곳이다. 아이에게 엄마가 있는 곳을 보내 놓고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한옥 지붕을 하나하나 선으로 그려가며 풍경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빈집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 없어질 풍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집에 사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오래 두고 보고 싶은 풍경이라니. 어쩌면 이러한 풍경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것 또한 나의 이기심 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이곳을 발견하고 이곳을 기록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 될는지도 모른다.


서점 나들이를 끝낸 딸이 엄마를 찾아왔다. 이제 데리러 가지 않아도 지도 보고 엄마 있는 곳까지 찾아오다니. 내가 돌보아야 할 아이를 지나 이제 친구가 된 것 같다. 서점에서 고른 책을 자랑하는 딸의 얼굴에 자부심과 흡족함이 가득하다. 엄마는 아무것도 해 준 것 없이 딸의 행복한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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