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by joyfulmito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간다. 하루도 집에서 쉬는 날 없이 매일을 돌아다니니 시간이 천천히 가기도 힘들겠다. 오전에 치과 진료도 다녀오고 어젯밤엔 늦게까지 드라마도 보느라 몸이 힘들다. 이런 날은 집에서 쉬어야 한다며 낮잠도 한 숨 잤는데, 한 숨 자고는 벌떡 일어나 오늘도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참 못 말린다.


집을 나서는데 집 앞에 택배 상자가 눈에 띈다. 새로 산 운동화잖아. 평소에 운동을 잘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운동화가 잘 없다. 오랜만에 많이 걸으려니 운동화를 하나 사야겠다 싶었다. 운동화를 살 때도 첫 번째 기준은 예쁜 컬러이긴 하지만 운동화이니만큼 오래 걸어도 발이 편할 거라는 기대를 한다. 새 운동화를 신고 싶은 마음에 바로 집으로 들어와 상자를 펼쳤다. 신속하게 새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바람이 세차다.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하게 된 친구가 전화기 건너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기겁한다. 이런 날에 밖에서 걷냐며 혀를 내두른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뚝심 하나는 대단하다. 세찬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걷는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바로 새 운동화. 새 신발을 신으면 발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발이 편하지 않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비싼 돈을 주고도 브랜드 있는 운동화를 사는 이유는 단 하나. 편할 거라는 기대 때문인데, 갑자기 배신감이 몰려온다. 새 운동화의 혀가 길고 너무 단단해서 걸을 때마다 발목을 쿡쿡 찌른다. 오늘따라 발목이 짧은 양말을 신었을 건 뭐람. 걷는 도중 양말을 아무리 당겨 올려 보아도 새 운동화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발에 생긴 생채기가 예수님의 십자가 못 자국을 연상시킨다. 아프다.


너무 멀리까지 가지 않고 카페에 정착을 하기로 했다. 꽁꽁 얼어붙은 몸도 녹일 겸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방을 열었는데. 이런. 스케치북이 없다. 어제 잠깐 꺼냈다가 다시 넣지 않았구나. 가방에는 어제 딸아이가 산 책이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 이래저래 일 안 되는 날이군. 책이나 읽다 갈까 생각하다가 카페 주인아주머니께 혹시 종이를 좀 얻을 수 있는지 여쭈었다. 크기가 나쁘지 않은 메모지를 얻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종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 그림은 또 마음에 든다. 이것저것 꼬이는 날 그림까지 마음에 안 드는 것보다는 낫지 생각하며 그림에 집중해 본다. 종이가 얇아서 물감은 칠할 수 없을 텐데 생각하면서도 하늘 색깔을 꼭 넣고 싶어 물칠을 하고 결국은 종이를 꾸깃하게 오그려 뜨리고 말았다. 색연필로 칠했으면 좋았을걸.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다. 아쉬움이 남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나만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저녁에 베트남 쌀국수를 해 먹을 예정이라 집에 가는 길엔 쌀 국숫집에 들러 짜조를 사 갈 생각이었다. 오늘따라 문을 닫았다. 오늘은 나름 일관성 있는 날이다. 이쯤 되면 짜증보다는 웃음이 난다. 다만 여전히 발목을 찌르는 새 운동화가 좀 거슬릴 뿐이다. 문득 잃어버린 운동화가 그립다. 해외 연수 갔다가 아침마다 조깅을 나가는 룸메이트를 따라 나가겠다고 쇼핑몰에 가서 운동화를 하나 샀더랬다. 하지만 야심차게 따라나선 조깅은 하루로 그치고 새로 산 운동화만 한국까지 고이 모셔 가지고 왔다. 신발장에 갇혀 자주 햇볕을 보지 못하던 운동화를 학교 강당에서 배드민턴을 치겠다고 다시 꺼내 신었는데, 방학 동안 강당에 공사를 하면서 강당에 둔 운동화가 사라지고 말았다. 꾸준히 해낸 운동이 없다.

돌고 돌아 걷기 운동에 정착한 후 이번 운동화는 제대로 운동시켜 줄 생각인데 이 녀석이 말을 잘 듣지 않네. 어서 빨리 고분고분해지길 바라며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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