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핫플레이스의 조건

by joyfulmito

갔던 곳을 계속해서 가는 편이 아니다 보니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를 고르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대구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고르라면 서문시장이 아닐까? 백화점보다 서문시장이 더 좋은 이유는 내가 서점보다 도서관을 더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 마음에 드는 것을 부담 없이 사 올 수 있기 때문인 듯. 맛있는 먹거리도 한몫 제대로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서문시장 나들이가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지 못해서일까? 서문시장에 가면 늘 먹는 양념 순대 꼬치를 먹고 수제 어묵을 사고 서비스로 주시는 식혜로 입가심을 한다. 좋아하는 간식이지만 매번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 지루하다. 나의 서문시장 나들이가 여전히 재미있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다음번엔 잘 가지 않는 길을 들어서 봐야겠다.


서문시장에 오가면서 많이 걸었으니 오늘은 집 근처 카페에서 그림을 그려보려 집을 나섰다. 늘 사람들이 많아 들어가지 않았던 카페가 웬일로 한산하다. 이때다 싶어 카페로 들어서 그림 그리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바로 이어 사람들이 마구 몰려온다. 쉴 틈 없이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역시 핫플은 다르구나. 주변 카페들은 다 조용한데 여기만 사람이 많은 이유가 뭐지? 하지만 잠시 앉아 있어 보니 금방 이유를 알게 된다.


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오는 외관 때문이었네.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잠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낸 후 사라진다. 내가 앉고 싶었던 창가 자리에 의자가 없는 이유도 사진 때문이구나.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 보이는 그 자리는 비워져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핫플의 조건이다. 사진 찍기 좋은 곳.


예전에 여행을 하며 보았던 젊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사진을 찍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 온 이들이 사진만 찍고 바로 여행지를 떠나 버렸다. 그들을 보며 "쟤네는 사진 찍으러 오나 봐?" 했었다. 젊은 사람 운운하는 거 보니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싶으면서도, 사진만 찍고 가기엔 그곳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없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다.


나 또한 SNS에서 예쁜 사진을 보면 장소를 검색하게 된다. 예쁜 그 장면을 보고 싶어 그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면 예외 없이 사람들에 치이고 차에 치인다. 여유롭게 그 장소를 즐길 수 없다. 빨리 사진만 찍고 다음 사람들에게 양보해야 한다. 아쉬움을 남긴 채 서둘러 돌아서야 하는데도 다음에 또 그런 곳에 가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름다운 장면을 내 눈으로 목격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큰 욕구가 아닐까. 기본적인 욕구가 쉽게 충족되는 현대에 예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단계인 듯도 하다. 예쁜 곳을 보면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도 당연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도 좀 더 남겨두고 싶다. 좋은 사람들을 데려가고 싶은 곳. 어딘가에 가고 싶을 때 생각 없이 나설 수 있는 곳. 대구에서도 내게 제주도 같은 곳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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