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걷기 여행의 시작은 이랬다.

by joyfulmito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현대에는 세월에 따라 나이 들어가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빨리 늙고 싶은 것은 물론 아니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온갖 화장품 광고에 혹해서 기미나 주름 개선 크림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종류를 구입하곤 한다. 눈이 갑자기 푹 꺼져 보여 그전에 쓰지 않던 화장품 종류를 다시 들이기도 한다. 시술은 하지 않겠다고 나름대로 선을 그었지만, 최대한 천천히 나이 들어가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최근에 갑자기 아랫배가 나와서 또 고민한다. 예전에는 배가 나오더라도 며칠 먹는 거 신경 쓰면 원상 복귀가 되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제 효과가 없다. 20년간 거의 같은 몸무게를 유지해왔지만, 몸매가 바뀌고 입던 옷을 못 입게 된다. 이럴 때 운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해결책일 텐데 도저히 할 줄 아는 운동은 없다. 운동 자체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운동신경도 꽝인 데다 그동안 시도해 본 여러 가지 운동 중 어느 것 하나에도 결국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면 걷기뿐이다. 그래도 걷기는 내가 자신이 있지. 초등학교 3학년. 시골에서 학교에 다니려면 버스를 타야 했는데, 집에 오는 길엔 버스비로 핫도그를 하나씩 사고 동네 아이들과 1시간 거리를 걸어 집으로 왔다. 집에까지 오면 새까맣고 꼬질꼬질했었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즐거웠다. 나름의 사춘기라 기억하는 대학교 1학년 시절. 음악 하나 귀에 꽂고 학교 교정을 열심히 누비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곤 했었다. 그 이후에도 여기저기 열심히 걸어 다닌 기억들은 늘 향긋하고 즐거웠다.


이번 겨울 방학 땐 하루에 2시간씩 걸어야겠다. 이제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데리고 여행하기엔 너무 커서 어차피 오랜 기간 여행하긴 힘들 것 같고, 아이들이 꽤 큰 덕분에 내게도 하루 두세 시간 정도의 여유는 생길 듯하다. 집에서 출발해서 1시간을 무작정 걸어 어딘가에 도착하면 커피 한 잔 마시며 그림 그리고 집에까지 다시 걸어오면 되겠다. 집에서 시작하는 1시간의 경로가 360도를 돌아가면 방법은 수백 가지가 되겠지. 그러다가 어느 날은 중간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잠깐씩 타고 반경을 넓혀 가기도 할 테고.


평생 다양한 도시에서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대구 토박이인 나는 43살이 되도록 아직도 대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내가 대구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나 싶기도 하다. 늘 다른 곳을 동경하고 여행 다니느라 정작 대구엔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길이 제한된 김에 내가 사는 곳을 파헤쳐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을 찾아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곳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도 의미 있을 것 같고. 마구 방학이 기다려진다. 방학은 한 달이나 남았지만 벌써 방학 계획을 세우는군. 물론 방학하자마자 갈 제주도 여행 5박 6일 준비도 다 끝내 뒀지.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 같다. 방학이 되기도 전에 방학 계획을 열심히 세웠었다. 제약받지 않고 내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늘 나를 흥분시킨다. 심지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고등학교 시절조차 내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었다. 이런 걸 보면 프리랜서가 되어야 했나 싶기도 한데, 지금으로선 1년에 두 번의 방학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나저나 방학 동안의 걷기 여행이 끝날 땐 살도 조금 빠져 있겠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