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병인 Jul 04. 2023

왜 이런 책을 내게 되었나

1. 되는 일이 없고 우군도 없었다. 

    

처음에는 올림픽 대회 같을 줄 알았다. 각자가 열심히 실력을 닦아서 메달을 놓고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경기장을 연상하며 주식공부를 시작했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들을 남들보다 많이 알기만 하면 메달을 딸 수 있을 줄 알고 불철주야 전력투구를 반복하였다.  

    

정치·경제·산업·신기술·국가정책·국제관계 등에 관한 책들을 두루 섭렵하고 TV·신문·잡지·유튜브·증권사 홈페이지 등을 부지런히 접하며 든든한 무기가 될 법한 정보와 지식을 열심히 모았다. 그 기간에 읽은 책들을 한 곳에 모으면 작은 책장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 임해보니 책에서 읽고 강의에서 들은 대로 되는 것이 한 가지도 없었다. 첨단무기인 줄 알고 열심히 익혀둔 금리, 환율, 기본적 분석, 기술적 분석, 가치투자, 역발상투자, 분산투자, 분할매수, 분할매도, 심리훈련, 인내, 손절매, 현금보유 등이 모두 방전된 배터리처럼 힘을 못 썼다.

     

그보다 훨씬 더 끔찍했던 것은 주식시장 전체를 통틀어서 내 편은 한 명도 없다는 자각이었다. 그 많은 주식책의 저자, 주식강사, 증권사직원, 외국인투자자, 기관투자자, 증권방송 진행자와 출연자, 주식전문 유튜버, 심지어는 나와 처지가 비슷한 개인 투자자들마저 아군으로 위장한 적군 같았다.  

    

게다가 주식시장은 위험천만한 지뢰밭을 살아서 통과해 백병전으로 적을 무찔러야하는 특공대의 격전장 같았다. 지뢰 말고도 덫과 함정이 널려있고 독충과 독뱀 같은 강적들이 우글거렸다.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돈 사냥꾼들이 굶주린 야수처럼 어슬렁거렸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시장을 배회하다가 어리숙한 투자자가 포착되면 한입에 집어삼켰다. 그런데도 나는 머릿속에 우겨넣은 지식들만 믿고 의기양양 자신만만하게 격전장에 들어섰다가 십리도 못 가서 고립무원 상태로 악전고투하는 내 몰골을 보았다. 어떻게 하지?  


   

2. 마음이 편해지니 선심이 생겼다 


천우신조로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과연 길은 가까이 있었다. “ETF에 편입된 기업들은 베테랑 펀드매니저들이 ‘매의 눈’으로 구석구석을 살피고 뒤져서 골랐을 것이니, 어떤 곳에 투자해도 승률이 높지 않겠어?”      


그렇게 곧바로 샛길을 찾고 얼마 안 되어서 생각지도 않은 귀인이 나타났다. ‘배터리 아저씨’가 온라인에 등장해 국내 이차전지 기술의 우수성을 극찬하며 친절하게 여덟 종목을 짚어준 것이다. 그런데 그 중 여섯 종목이 내가 나름의 방법으로 고른 종목들과 일치해 힘든 시험을 쉽게 통과한 기분이었다.      


얼마 뒤에 배터리 아저씨가『K 배터리 레볼루션』이라는 책을 펴내고 <이차전지 투자바이블>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강의도 진행하여 배터리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향후 3년, 새로운 부의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법」이라는 부제는 기대감의 수위를 높여주었다.      


그대로 믿고서 수중의 주식들을 모두 팔고 이차전지 종목들을 매수했더니 오래도록 청색이던 내 계좌의 색깔이 곧바로 적색으로 변했다. 서해의 바닷물이 날마다 해안을 들락거리듯, 내 계좌도 날마다 오르락내리락하여도 걱정되지 않았다. 위대한 기업들과 동행한다 생각하니 마음에 여백이 생겼다.


그래서 모처럼 영혼이 편안한 호사를 즐기며 지내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다섯 가지 생각이 동시에 발아하더니 슬금슬금 줄기를 키우고 가지를 뻗쳤다.     


첫째로, ‘주식투자로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없고 강의도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싶었다. 주식시장은 미리 규칙을 정해놓고 기량을 겨루는 공정한 ‘경기장’이 아니라 비겁한 수단과 방법도 불사하며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치열한 ‘싸움터’에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속임수와 거짓말이 난무하는 주식시장의 실상을 전국의 초보 투자자들에게 낱낱이 알려주고 싶었다. 특히 내가 깜빡 속았던 ‘무자비한 먹이사슬’이 엄존하는 현장을 대략이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50년 가까이 범죄현상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쌓인 ‘힘없는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이 관성처럼 발동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오랜 추적 끝에 어렵게 작성한 ‘공매도과정과 자금흐름도’와 더불어서, 공매도 주체가 예측을 잘못해서 거액을 손실을 입게 되면 어느 정도까지 비열해질 수 있는지를 형사학의 관점에서 반드시 짚어주고 싶었다.      


아울러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순진한 개인 투자자들을 등쳐먹는 파렴치범들이 자주 써먹는 범행수법과, 주식시장의 투명·공정·질서·안정을 위한 금융당국과 수사당국의 대응에 관한 정보와 지식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잘 모르지만, 누구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로, 주식으로 부자가 되어보려다가 돈의 노예가 되고 희망의 포로가 되어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가 천우신조로 기사회생하여 지름길을 발견하고 안정 국면에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을, 사사건건 판단과 결정이 힘들어 어려움을 겪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넷째로, 2001년 4월 정부가「소재ㆍ부품ㆍ장비산업 경쟁력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처음 시행한 이후 20여 년간 ‘배터리산업 육성정책’을 꾸준히 펼쳐온 과정을 정리한 도표를 공유하고 싶었다. 어떤 현상의 현재와 미래를 바르게 보려면 먼저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이차전지 종목에 대한 투자의 결과를 좌우할 변수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학습한 내용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는 전기차 판매 추이, 전기차 보급의 걸림돌, 배터리용 핵심광물 조달, 사용된 배터리 재활용 등에 대해 나름의 관점에서 취합한 자료들을 전국의 개인투자자들과 나누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여느 책들처럼 수익이 보장되는 주식투자 기법을 알려주려고 쓴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주식을 하려면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서술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막 주식을 시작하였거나 장차 해볼 생각인 남녀노소를 위한 오리엔테이션 교재인 셈이다.   


                                     

                                                       2023년 5월 저자


                          

                                * 이 책을 일흔 살을 맞이하는 기념작으로 생각하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