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神)의 영역 침범
증권사들의 홈페이지를 접속해보면 투자자들의 판단과 선택을 돕기 위해 게시된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자료들의 내용을 확인해보면 그 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언제 그렇게 많이 모으고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분석하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증권사가 분석과 예측을 잘못해서 투자자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최근의 예로는 여의도 증권가 및 언론계가 K배터리 산업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전망하였다가 뒤에 여러 종목의 주가가 급등하여 매수 기회를 놓친 투자자들의 비난과 원성을 샀던 일을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많은 투자자들이 증권사 임직원이 소속과 직함을 밝히고 TV의 주식프로에 출연해 유망분야나 기대주를 알려주는 말을 믿고 주식을 샀다가 손해를 봤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다. 그런데 주가라는 것이 본래 신이 아니고서는 맞출 수가 없는 것인 모양이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투자분야에서 활약하다 귀국한 존리는 2012년 9월 펴낸『왜 주식인가?: 부자가 되려면 자본이 일하게 하라』라는 저서에서, TV에 출연해 투자전략을 조언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일반투자자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적었다(72쪽).
"많은 사람이 주식투자를 어렵게 생각하고, 펀드매니저나 증권회사 직원 같은 전문가들이 자신보다 주식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으나, 실제는 다르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당신보다 조금 더 투자 경험이 많고, 조금 더 훈련이 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전문가의 말에 너무 의존하면 도리어 해를 입을 수 있다. 그들이 매일 주식에 관련된 일을 한다고 해도 모든 상장회사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특히 경제신문이나 증권방송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많은 사람에게 추천종목으로 알려진 주식을 덩달아 매수해서 수익을 낼 확률은 높지 않다."
서울대학교 재학생 시절 서울대투자연구회 ‘스믹(SMIC)’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탁월한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라쿤자산운용의 홍진채 대표도 2020년 10월 펴낸 『주식하는 마음』이라는 책에서 존리의 말과 맥락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홍대표는 위 저서의 제10장(누구로부터 배울 것인가)에 <전문가에 대한 환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넣으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내용이 다소 길지만 투자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내용이라 전문을 옮겨보겠다(263-267쪽).
"펀드매니저들은 대부분 시장을 이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체가 시장이기 때문이지요. 편드매니저들의 목표는 옆집 또는 옆자리에 앉은 펀드매니저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것입니다. 시장이 전반적으로 상승해봤자 동료 매니저들도 다 같이 돈을 버니까 의미가 없습니다. 이들이 하고자 하는 바는 가격이 오를 법한 주식을 옆자리(또는 옆집) 동료보다 더 빨리 사고, 주가가 하락하기 전에 더 빨리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당연히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겠지요. 펀드매니저 10명의 성과를 줄 세우면 5명은 상위 50%에, 5명은 하위 50%에 들 것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일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수수료와 세금, 슬리피지에 따른 거래 비용이 나가기 때문에 이들의 성과가 평균적으로 전체 시장보다 뒤진다는 것입니다."
"금융시장의 전문가들이 잘하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이미 일어난 상황에 대한 설명이지요. 경제뉴스의 시황 부문을 보면 이 점을 거의 매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뒤 주식시장이 상승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시황에는 ‘금리 인하로 인하여 유동성 확대 기대감이 퍼지면서 주식시장이 상승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금리를 인하한 뒤 주식시장이 하락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시황란에 이런 뉴스가 나옵니다. ‘금리를 인하해야 할 정도로 경제가 취약하다는 점을 중앙은행이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에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주식시장이 하락했다.’ 아니면 이런 기사가 나오든가요. ‘금리인하 기대감이 선반영됐다.’ 실제로 어떤 이유로 시장이 상승하고 하락했는지는 매매를 실행한 개개인 모두에게 질문해봐야 알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 바닥에 진정으로 전문가는 없습니다. 편드매니저의 과반은 시장을 못 이기고, 이코노미스트의 경제전망은 항상 틀립니다. 애널리스트는 ‘주가를 맞히는 사람’이라고 많이들 알고 있지만, 애초에 그분들의 역량은 주가를 맞히는 게 아니라 기업의 펀더멘털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썰을 잘 푸는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만, 당신이 원하는 ‘예측을 믿고 맡길’ 전문가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극소수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때그때 단기적으로 화려한 성과를 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거기에만 주목하니까요."
홍대표가 언급한 슬리피지(slippage)란 주식을 매수 혹은 매도할 때 체결된 가격이 주문한 가격대보다 낮거나 높은 경우에 그 차액을 일컫는 말이다. 슬리피지가 생기는 원인은 주문이 시장에 접수되어 체결에 이르는 동안에도 주가가 끊임없이 변동하기 때문이다.
교보증권 영업이사 박병창은 2021년 1월 펴낸 『주식투자 기본도 모르고 할 뻔했다』라는 책에서 증권사가 제시하는 ‘목표주가’의 허황성을 지적하였다. 매우 고맙게도 「주식투자할 때 간과하기 쉬운 투자요령」이라고 부제가 달린 제4장(가치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에〈기업분석 보고서의 허와 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믿기지 않는 실상을 알려주었다(183-184쪽).
"각 증권사가 발표하는 기업분석보고서를 많이 읽어본 투자자라면 목표주가 제시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을 것이다. 현 주가 대비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 주가를 제시한다든지. 주가가 상승하면 그에 따라 목표 주가를 지속적으로 높인다.주가가 하락할 때는, 하락 초기에는 목표 주가를 유지하다가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해 모두들 충분히 하락했다고 느껴지면 그때서야 목표 주가를 낮추는 경우가 빈번하다."
2. 허무맹랑 황당무계
오랫동안 미국의 증권계에 머물며 선진화된 투자시장을 30년 가까이 경험하고 귀국한 존리는 2012년 9월 펴낸『왜 주식인가?: 부자가 되려면 자본이 일하게 하라』라는 저서에서, TV의 주식프로에 출연해 그날의 투자전략을 알려주는 사람들은 예측이 불가능한 것을 예측한다고 꼬집었다(36쪽).
"가끔 TV를 보면 전문가들이 나와서 주식투자에 관해 조언을 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프로그램들이 종종 있다. 주로 ‘오늘의 투자전략’에 관한 것들로 현금 비중을 늘리라거나, 관망하다가 저점에 사라거나, 아니면 차트를 보여주면서 주식 매수를 뒤로 미루라고 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물론 오늘의 투자전략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의 의도는 시청자들을 돕겠다는 것이겠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좋은 조언이 아니다. 하루나 이틀 사이에 기업의 가치가 달라질 리 없는데 그날그날의 전략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명색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런 조언을 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고 찬성할 수도 없다. 하루하루 매매전략을 세워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 매일매일 주식가격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맞춰서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시간 낭비다. 또, 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존리 말고도 예언과 전망의 허황됨을 지적한 사람이 도처에 많다. 대표적 본보기로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삼성투신운용 리서치 등에서 20여 년간 시장분석과 경제분석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하다 현재에 이른 피데스투자자문의 김한진 부사장을 들 수 있다.
김부사장은 2021년 2월 김동한(「삼프로TV」대표 겸 진행자)·윤지호(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등과 공동으로 펴낸『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라는 책의 제2장(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깨달음이다)에 실린〈왜 시장을 예측하는가?>라는 글에서, 주식시장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였다(53-56쪽).
"경기 흐름을 파악하고 증시의 큰 변곡점을 알아내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요? 결론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입니다. 물론 타고난 통찰력으로 미래를 잘 맞추는 사람이 간혹 있기는 합니다.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고 솔직히 부럽습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보통의 사람들은 어쩌다 한두 번 시장을 맞출 수는 있어도 지속적으로 예측이 가능하기는 어렵습니다."
"분석은 점을 치는 행위와는 달라서 변수들의 상관성과 경향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객관성과 과학에 의존하는 행위입니다. 경제전문가나 주식전략가들의 예측 대상인 주가나 금리, 환율, 유가 등을 결정하는 요인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 영향을 주는 변수와 강도는 시시때때로 변함니다."
"가격은 미래를 반영하는데 우리의 예측 작업은 과거 데이터를 토대로 하니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더욱이 이변과 역전, 거품과 공포에 감정과 심리까지 개입된 자산 가격을 사회과학 도구로 예측하는 접근법은 애당초 무리인지도 모릅니다. 분석가 자신의 그날 기분에 좌우되기도 합니다."
"지난 5년은 물론 지난 50년간 굵직한 국면을 면면히 맞춘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앞으로 5년과 50년도 그럴 확률이 낮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사고력과 분석력으로 이 종합예술 같은 증시를 정확히 맞추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주가는 단지 한두 개의 변수로 기계처럼 움직이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시장 예측에 몰두합니다(물론 단기투자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증시를 둘러싼 변수가 어디 한두 가지인가요? 경기 사이클과 기업이익, 유동성과 이를 결정하는 통화정책,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과 환율, 그리고 백신 보급까지, 얼핏 떠오르는 변수만 해도 수십 가지입니다. 분석을 통해 시장의 짧은 변곡점까지 일일이 맞추고 설명하려는 건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닐뿐더러 감(感)으로 접근하는 사람보다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보증권 영업이사 박병창은 2022년 8월 펴낸 『박병창의 돈을 부르는 매매의 심리』라는 저서에서 전 세계의 경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관계당국들도 헛발질을 밥 먹듯이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104쪽).
"IMF, 미국의 연준, 월가 IB 등에서는 매년 분기별로 경제성장률, 물가 등의 예측치를 발표한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계산한 것이지만 빗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예측치를 내놓을 때마다 수정을 거듭한다. 글로벌 경제의 환경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니 빗나가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도, 확률을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예측치를 내놓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전문가들이 그런 기관들의 그릇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편다는 것이다."
3. 오락가락 우왕좌왕
LG그룹에서 기획과 IT사업에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세계 최초의 상업인터넷솔루션(MCIS) 과정을 연수한 뒤로에 IT기술을 접목한 주식투자 기법을 전파해온 최기운은 증권사들의 행태가 얼마나 한심한지를 증언해주었다.
2021년 4월 펴낸『주식투자의 정석: 수익으로 이어지는 명쾌한 투자수업』이라는 책의 제3강(전문가는 과연 주식투자로 수익을 내고 있을까)에 <아님 말고 식의 투자조언과 면피용 분석〉이라는 글을 실어, 증권사들이 종목을 추천하는 과정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려주었다 (85-86쪽).
"증권사 추천종목들의 성적이 초라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보니 증권회사와 전문가들은 수시로 추천종목을 바꾸고 증시 분위기가 조금만 반전되어도 대세 상승과 대세 하락을 번갈아가면서 외치는 모습을 보인다. 증시가 조금만 오르면 대세 상승이라고 하면서 주가가 끝 간 데 없이 상승할 것 같은 분위기 일색의 전망과 분석으로 도배가 된다. 반대로 조금만 하락하기 시작하면 대세 하락이라고 떠들어댄다. 이처럼 분석이 틀리면 어물쩍 넘어가고, 몇 번 틀리다가 한 번 적중하면 대단한 실력인 양 홍보를 한다. 동전을 던져도 절반은 맞는데 말이다. 장황한 설명을 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는 나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알 뿐이지, 그들이 수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문가는 신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우리가 회사에서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듯이 증시 분석과 투자판단 때문에 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증권업계의 직장인일 뿐이다."
존리는 2022년 2월 펴낸『왜 주식인가?: 시간에 투자하는 대가의 생각』이라는 저서(2012년 출간한 책의 개정판)에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TV에 출연해 미래의 주가를 예측하거나 예언하는 것을 모두 부질없는 헛수고로 치부하였다(56-57쪽).
"주가의 오르내림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맞추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을 맞추는 게임에 몰두하고, 매매를 잘하는 사람들이 전문가라고 착각한다(102쪽)." "주가의 단기적 움직임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것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본인이 신이라고 오해하는 것이거나 거짓말쟁이다(136쪽)."
"간혹 친구들이 연말의 코스피지수에 대한 예상치를 물으면, 나는 대부분 '모른다'고 대답한다. 시장을 전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내일의 코스피 지수를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한데 몇 개월 후에 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어느 누가 정확히 예측을 할 수 있단 말인가?(144쪽)."
존리는 위와 같은 한국적 특이현상의 원인을 단기투자를 선호하는 풍조와 연계시켰다. 단기투자 문화가 대세를 이루는 탓에 단기 전략이 필요하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단기 시장전망을 내놓은 사람이 많은 것으로 진단한 것이다.
그 원인은 여하튼지 간에,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면서 주가와 지수의 변동을 예측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넘쳐나는 현실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후진성을 말해주는 것일 터이다. 존리도 위와 같은 진단을 내놓기에 앞서 그 점에 대해 언급하였다.
"세계적 경제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파이낸셜 타임스」만 해도 단기적으로 주가나 지수를 예측하는 기사는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신문들에 나오는 주식 기사의 열 개 중 일곱, 여덟 개는 주가나 지수에 대한 단기적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