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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인 Jul 04. 2023

제5장 금융시장의 가식과 위선

1. 수요자와 공급자 관계

        

증권회사를 비롯한 모든 금융투자업자는 투자에 필요한 도구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나 이자를 받는 영업을 해서 돈을 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금융투자업체의 임직원은 태생적으로 투자자들과 대척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증권사마다 갖가지 혜택을 내세워 호객에 주력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시라. 주식거래에 따른 수수료 면제나 할인은 기본이고, 국내외 기업의 주식을 사은품으로 주는 곳도 있다. 이러한 친절과 배려들은 공히 투자자를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해서 영업 대상으로 삼기 위해 기획된 전략들이다.        


증권회사가 투자고객으로부터 일정한 증거금(신용거래보증금)을 받고 주식거래 결제대금을 빌려주는 것은(신용거래융자) 증권사가 고객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는 것이다.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이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를 하려는 고객에게 수수료를 받고 주식을 빌려주는 것도 엄연한 돈놀이다. 


고객이 소정의 증거금을 입금하면 증권사가 주식을 대리로 사고 팔아 생기는 차액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차액결제거래(contract for difference, CFD) 역시 증권사가 고객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고객에게 자금이나 주식을 빌려줄 때는 태도가 자선가 같다가 회수할 때는 사채업자 모드로 변한다.      


15년 동안 다수의 상장사·자산운용사·창업투자회사·벤처캐피탈 등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며 실무와 운영을 두루 거친 정지웅은 2021년 10월 펴낸『금융시장의 포식자들』이라는 책의 제3장(두 번째 포식자, 기관)에서 자산운용사와 투자기업들의 표리부동을 코미디에 비유하였다.     


"금융시장이 아직 후진적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 자산운용사나 투자 기업의 회장들은 시세조정으로 재미를 봤다. 그때 실컷 재미를 본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주식이 갑자기 뜨니까 여기저기 영상에 얼굴을 내밀어 가치투자와 장기투자를 얘기하고 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165쪽)."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를 운용하는 이들도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한다. 전문가들도 기회에 돈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단타 내지는 중장기 투기를 하면서 대중 앞에서는 장기투자를 권한다. 단기적 손실을 장기투자의 오랜 시간으로 희석시킬 수 있고 손실에 대해 발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167-168쪽)."


대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증권계에서 30년 가까이 투자경험을 쌓고 귀국한 존리는 증권사의 홍보에 쉽게 넘어가는 투자자를 많이 보았던 모양이다. 2012년 9월 펴낸『왜 주식인가?: 부자가 되려면 자본이 일하게 하라』라는 책에서, 증권사를 포함하여 금융투자업체들의 주된 수입원은 수수료라는 점을 강하게 상기시켰다(73-74쪽). 

         

"증권사 직원은 자신들의 고객이 계속 매일매일 주식을 사고팔기를 원한다. 고객의 거래수수료가 수입의 원천이기 때문이고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일반 주식투자자들과 증권사는 근본적으로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는 관계에 있다. 증권사 직원들 외에도 일반 투자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주식을 사고팔기를 원하는 측이 많다. 저가에 미리 사놓은 주식을 고가에 팔아서 수익을 올리려는 개인이나 기관들도 뉴스와 매스컴을 적극 활용한다. 이미 주가가 기업의 가치에 근접하였거나 기업의 가치보다 비싼 주식을 팔기 위해 호재 뉴스를 내보내기도 하고, 매수세가 많은 것처럼 시세를 조작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반 투자자들은 대부분 손해를 보는 것이다."

        

IT기술을 접목한 주식투자 기법을 전파해온 최기운은 2021년 4월 펴낸 『주식투자의 정석: 수익으로 이어지는 명쾌한 투자수업』이라는 책을 통해 주식거래 수수료가 증권회사의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주식투자,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부제가 달린 자신의 저서 제3강(개인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분석과 자기관리)에 〈거래수수료로 연명하는 증권회사의 구조적 문제〉라는 짧은 글을 넣어, 증권회사의 수익구조를 명확히 깨우쳐주었다(84-85쪽).      


"증권사들은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고객들의 거래수수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잦은 매매를 해야 수익이 증가하는 전근대적 수익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이 중·장기적 안목으로 장기투자를 하거나 시장을 떠나서 관망하게 되면 증권사는 수수료 수입이 급감하여 회사운영에 큰 타격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국내 증권사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투자자들에게 중장기투자 대신 잦은 거래를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투자자가 있어야 증권회사도 존재하는 것인데, 투자자야 수익이 나건 말건 수수료를 챙기는 상황이다. 증권사는 여러 추천종목을 제시해서 단타 투자자의 자산을 불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익이 나든 안 나든 목표는 거래수수료다."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전업투자자가 되었다는 한주주는 최기운의 말이 허위가 이님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녀가 2023년 2월 펴낸『돈 버는 사람은 단순하게 생각합니다』라는 저서의 제5장(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중간에 〈투자는 유행이 아니다〉라는 글에 ‘증권사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맹신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보인다(260-262).  

    

"국내 증권사의 수익이 주로 어디서 나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많은 부분은 거래수수료에서 비롯된다. 증권사는 보통 금융브로커, 즉 중개인의 역할을 통해 돈을 번다. 그들은 고객이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두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거래를 끌어내야만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밤을 새워 해당 분야를 공부하고 조사해서 개인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그 정보를 마음껏 누리는 것은 좋지만, 상대방이 왜 이런 귀한 정보를 나에게 주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증권사에 속한 전문가들은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다)의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 그들이 운용하는 상품은 누군가의 투자를 받아야 하므로 돈줄을 쥔 투자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특정분야의 ETF상품 등을 판매하기 위해 그 분야가 뜨는 이유를 끊임없이 조사하고, 유행을 빠르게 쫓거나 새 유행을 발굴해서 고객들에게 소개해야 한다."           


2. 선 기업 후 개인      


교보증권 영업이사 박병창은 2021년 1월 펴낸 『주식투자 기본도 모르고 할 뻔했다』라는 책에서 증권사들이 ‘기업분석 보고서’를 내는 진짜 이유를 깨우쳐주었다. 「주식투자할 때 간과하기 쉬운 투자요령」이라고 부제가 달린 제4장(가치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에〈기업분석 보고서의 허와 실〉이라는 글을 넣어 거의 영업비밀 수준의 내부정보를 알려주었다(183-184쪽).     


"애널리스트가 개별 기업을 분석하는 보고서는 근본적으로 개인 투자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관 투자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세미나를 통해 설명한다. 분석한 결과가 잘 맞아서 미래의 기업실적과 주가가 예상대로 상승하면 보고서를 작성한 애널리스트의 몸값이 올라갈 것이다. 기업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주식시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그 산업을, 그 기업을 잘 아는 사람이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주가가 좋지 않을 때 미래에 좋아질 기업을 바로 추천하기보다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하고 수급(매수세, 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제야 보고서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심한 경우는, 좋은 기업을 발굴해서 확신이 생기면 본인 주변의 기관 투자자들에게 먼저 자료를 제공하고, 그들이 매수해 주가가 일정부분 상승한 후에야 공식보고서를 작성해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즉, 개인 투자자들은 주가가 상승하고 나서야 보고서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3. 애널리스트 혹사  

   

앞에서 이미 그의 저서와 용기 있는 공익제보를 소개한 바 있는 김대욱은『주식 고수들만 아는 애널리스트 리포트 200% 활용법』이라는 저서에서 애널리스트 보고서의 한계와 취약점을 깨우쳐주었다.  저자는 ‘애널리스트 리포트 200% 활용법’을 적기에 앞서「애널리스트의 현실: 항상 을의 입장인 애널리스트」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는데, 그 안에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고단한 일과가 자세하게 담겨 있다(15-17쪽). 

        

"일반투자자들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주요 업무는 기업을 분석해서 리포트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일과의 절반을 기업 분석 및 리포트 작성에 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본사 법인영업(자산운용사 등 국내 기관투자자들 대상 영업)이나 국제영업을 도와주는 일을 병행한다.      

수시로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과 미팅하면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자신이 커버하는 종목의 현황을 설명해주는 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가끔 궁금한 사항이 생겨서 본사 리서치센터에 전화를 하면 애널리스트와 통화하기가 쉽지 않다."

      

"애널리스트가 국내외 기관투자자의 기업탐방에 동행하여 기업의 홍보담당자(IR)와의 미팅을 도와줄 때도 있다. 또, 국내 상장기업이 해외 기업설명회(Non Deal Road Show, NDR)를 진행할 때 증권사의 국제영업 직원, 상장기업의 홍보담당자와 동행하여 해외 외국인투자자(해외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와의 미팅을 지원하기도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기업들은 1년에 몇 번씩 유럽, 북미, 아시아(주로 홍콩, 싱가포르) 지역의 외국인 투자자를 직접 방문해서 회사의 현황과 미래 전략을 홍보하는 기업설명회를 주기적으로 연다. 회사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해를 도와, 그들이 자기 회사 주식을 많이 매수하게 하게 하면 주가도 오르고 기업의 이미지도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애널리스트가 기업분석 이외의 다양한 일들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애널리스트의 복무성적을 매길 때,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의 도움을 받는 소속 증권사 법인영업부나 국제엽업부 직원의 평가점수가 큰 비중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들도 전문가라는 신분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일반 직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4. 눈가림과 진실왜곡

       

서울의 여의도 증권가에서 30년 넘게 애널리스트로 활약하다 이차전지 업체로 이직해 한동안 K배터리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힘을 쏟았던 박순혁 전 금양 홍보이사는, 국내 증권사 중에는 투자자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늘리는 데만 정신이 팔린 곳이 적지 않다고 하였다.

      

박순혁 전 이사는 2023년 2월 펴낸 『K 배터리 레볼루션』이라는 저서의 제5장(배터리 산업에 대한 5가지 거짓과 진실)에 〈왜 LFP는 중국에서만 사용되다 사라질 운명인가〉라는 글을 실어, 여의도 증권계가 언론을 앞세워 국내 배터리산업의 장래를 사실과 다르게 호도한다고 목청을 높였다(149-151쪽).  

   

"2021년 10월 미국의 전기차업체인 테슬라가 폭탄선언을 했다. “앞으로 스탠더드 레인지 모델 전기차에는 전량 LFP 배터리를 쓰겠다.”고 한 것이다. LFP 배터리는 중국의 업체가 리튬·인산·철을 사용하여 만드는 제품이다. 그런데 테슬라의 선언이 나오자마자 테슬라를 띄우는데 열심인 여의도에서 난리가 났고, 이에 따라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의 주식이 전반적으로 폭락했다. 당시 여의도 증권가에서 나온 발언 가운데 가장 황당했던 말은 “테슬라가 LFP 배터리를 쓰기로 하였다면 한국의 삼원계 배터리(NCM 등)는 이제 끝났다.”라는 언급이었다. 테슬라를 시작으로 다른 자동차제조사들이 너도나도 LFP 배터리 사용을 확대해 삼원계 배터리를 주력으로 하는 K-배터리는 곧 망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 후의 상황을 보면 K-배터리는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데 비해, LFP 배터리를 쓰는 곳은 테슬라 한 곳 뿐이고, 앞으로도 중국 내에서만 사용되다 서서히 사라질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일각에서는 아직도 LFP 배터리가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향후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늘려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K-배터리 업체들은 그동안 ‘LFP 배터리는 전기차용으로 적합하지 않고, 향후 대세는 한국 기업들의 주력제품인 삼원계 배터리(NCM 등)가 될 수밖에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하지만 국내의 언론과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국내 배터리업계의 주장을 믿으려하지 않고 있다. 그와 같은 정서 뒤에는 기업투자에 대한 오래된 불신도 있겠지만 ‘테슬라 우상화’가 미친 영향도 상당히 클 것으로 짐작된다."

       

박순혁 전 이사는 2023년 4월 17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저술한 『K 배터리 레볼루션』에서 여의도 증권가 사람들을 거짓말쟁이 집단으로 규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애널리스트들의 위상이 떨어지고, 반대로 돈을 벌어주는 IB(투자은행) 사업부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애널리스트는 IB가 시키는 대로 글을 쓰는 부속품이 되었다. 그래서 법인영업부가 보기에 자기네 고객이 숏 포지션(주식을 매도한 상태)이면 부정적 보고서를 내고, 롱 포지션(주식을 매도한 상태)이면 긍정적 보고서를 내는 양상이다."      


"지금 여의도는 롱숏 펀드가 장악했다고 본다. 이들이 포지션을 정하는 대로 증권사 추천주가 바뀌고 증권방송들도 따라서 움직인다. 증권사들이 기관투자자들, 특히 펀드들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A증권사는 2021년에 회장이 테슬라, CATL, BYD를 유망종목으로 꼽은 뒤로 계속해서 그 세 기업을 추천하는 보고서를 내왔다.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B증권 사례도 대표적이다. B증권사 고객인 C펀드가 에코프로비엠 공매도 수량을 많이 들고 있다. 2023년 연초부터 B증권사 직원이 증권방송에 출연해 해당 종목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꾸준히 계속해온 이유는 고객과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여의도 증권가는 주식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중개해주고 성장하는 산업에 자금이 공급되게 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자기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자금 조달이 안 되게 방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K-배터리의 기술수준과 배터리사업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바로 뒤의 제6장에서 자세히 살펴볼 ‘공매도 과정과 현금흐름’을 상기하면, 박순혁 전 이사가 한국경제신문 기자에게 한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뇌피셜’이 아닐 개연성이 높다. 증권사 임원의 일탈행위가 종종 적발되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뒤인 2023년 5월 초순 유진투자증권의 임원이 주가조작에 관여한 의혹이 불거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가 해당 임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여 업무기록 등을 가져갔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그 임원은 2018년에 한 에너지관련 기업의 주가가 급등할 당시 주가조작 세력과 공모해 출처 불명의 호재를 퍼뜨리는 데 가담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내막은 앞으로 사법절차가 더 진행돼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만약 확실한 증거가 드러난다면 그 임원은 죗값을 단단히 치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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