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 꿀벌 May 07. 2024

완벽주의 치료 시작

완벽주의의 반대말은 목표 달성

작성일 2018.9.4.


요즘 경험수집잡화점에서 하는 30일 필사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예전에 서울미술관에서 한 공간에 책상과 공책이 있고 어떤 책을 필사하는 섹션이 있었다. 한 사람만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기에 시간을 예약해서 어떤 작품을 이어서 필사하는 예술 프로젝트였다. 발디딜 틈 없이 정신없는 공간에서 사는 나로서는 깔끔하고 멋스러운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쉼이고 예술 활동이었기에 그곳에서 필사하는 나를 그려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신청하려고 보니 마감이 되어 아쉬움이 아주 크게 남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필사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아쉬워했던 마음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 같아 바로 신청을 했다. 그때 필사하는 장소가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카운터에서, 방에서 필사를 하는 순간 기억 속의 그 장소로 돌아가 고요한 나만의 시간 안에서 쉬는 것 같아 짜릿할 정도로 행복하다.


어제 필사했던 내용은 존 에이커프의 '피니시'라는 책에서 발췌한 완벽주의에 대한 내용이었다.


출처 Pinterest



완벽주의의 반대말은 '

목표 달성'이다.

우리는 늘 더 나은 것을 목표로 한다.

더 나은 외모, 더 나은 기분, 

더 나은 자신.

그런데 갑자기 한 순간에 '더 나은'이 '최고의'로 돌변한다. 


작은 성장 따위는 가당치도 않게 여기며 하룻밤 사이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싶어한다. 이렇게 완벽주의는 약삭빠르게 빈 틈을 파고들어 조금씩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선한 욕심을 철저히 이용한다.



완벽주의의 반대말이 목표 달성이라니?!


나는 무의식 중에 '목표 미달성'이라고 생각했었다.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 자체가 완벽주의를 더욱 부추기는 거라고 막연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관관계, 인과관계를 곰곰히 따져보니 아하! 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나는 성격상 호기심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리고 무엇을 할 때 항상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계획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쓴다.


그!런!데! 

계획이 끝나고는 실행에 옮길 때는 계획 대로 하지 않거나 계획을 깨뜨리는 것을 즐기는 모드로 전환이 된다.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잔뜩 타이트하게 세워놓고는 널부러져 버린다. 이런 패턴을 몇 번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지만, 나의 기대치, 욕심과 실행력 사이에 벌어진 간격은 좀처럼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계획을 세우고 작심삼일이라도 무한반복한 것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제까지 여러 작은 성공과 성취들이 있었다고 자신을 격려하며 힘을 얻어 내 기대치와 실행력 사이에 있었던 장애물들을 하나씩 제거해 보기로 했다.


일단, 작은 시도를 하는 것이다.

하루에 하고 싶은, 해야 할 일들을 매번 꼬박꼬박 적었지만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육체를 이탈하려는 멘탈을 붙들고 협상을 한다. 


'스트레칭? 1분만 하자구! 어때? 쉽지?' 

오케이~! 그리고 스트레칭을 해 본다. 어느새 내 욕심에 이끌려 3분이 넘어간다. 

'여기서 스탑!! 가볍게 1분만 하자구~ 모든걸 가벼운 마음으로 맛만 본다는 마음으로!'

더 하고 싶은 걸 참고 멈췄다.


내 일과 리스트에는 번역도 있다. 모르는 단어, 표현들에 압도되어 한동안 책에 먼지가 쌓였다.

'자, 하루에 한문장 어때? 할 수 있겠지?'

오케이~! 용기를 내어 시작했다. 한 문장이 금새 3문장을 넘어가고 있다. '어, 재미있는데 왜 이걸 진작 하지 못했을까?'

'여기서 스탑~! 매일 조금씩만 하자니까?! 매일 맛만 보자구 맛만!!'

결국 스트레칭도 번역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멈췄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아, 그동안 내가 완벽주의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했구나. 이제는 작은 시도, 작은 성취를 해 보자.

1분만, 한 문장만, 한 페이지만 해 보는 거야.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해보면 재미있잖아.

즐기면서 조금씩 그렇게 해보자. 


이렇게 내 욕심과 실행 사이의 장애물을, 내 방을 치우듯 치우게 되어 기쁘고 감격스럽다.

물론 이게 시작이고 앞으로 더 많은 장애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마음으로 기대감으로 끝까지 여정을 가보고 싶다.  

이전 01화 질 때 지더라도 이렇게 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