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의 반대말은 목표 달성
작성일 2018.9.4.
요즘 경험수집잡화점에서 하는 30일 필사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예전에 서울미술관에서 한 공간에 책상과 공책이 있고 어떤 책을 필사하는 섹션이 있었다. 한 사람만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기에 시간을 예약해서 어떤 작품을 이어서 필사하는 예술 프로젝트였다. 발디딜 틈 없이 정신없는 공간에서 사는 나로서는 깔끔하고 멋스러운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쉼이고 예술 활동이었기에 그곳에서 필사하는 나를 그려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신청하려고 보니 마감이 되어 아쉬움이 아주 크게 남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필사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아쉬워했던 마음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 같아 바로 신청을 했다. 그때 필사하는 장소가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카운터에서, 방에서 필사를 하는 순간 기억 속의 그 장소로 돌아가 고요한 나만의 시간 안에서 쉬는 것 같아 짜릿할 정도로 행복하다.
어제 필사했던 내용은 존 에이커프의 '피니시'라는 책에서 발췌한 완벽주의에 대한 내용이었다.
완벽주의의 반대말은 '
목표 달성'이다.
우리는 늘 더 나은 것을 목표로 한다.
더 나은 외모, 더 나은 기분,
더 나은 자신.
그런데 갑자기 한 순간에 '더 나은'이 '최고의'로 돌변한다.
작은 성장 따위는 가당치도 않게 여기며 하룻밤 사이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싶어한다. 이렇게 완벽주의는 약삭빠르게 빈 틈을 파고들어 조금씩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선한 욕심을 철저히 이용한다.
완벽주의의 반대말이 목표 달성이라니?!
나는 무의식 중에 '목표 미달성'이라고 생각했었다.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 자체가 완벽주의를 더욱 부추기는 거라고 막연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관관계, 인과관계를 곰곰히 따져보니 아하! 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나는 성격상 호기심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리고 무엇을 할 때 항상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계획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쓴다.
그!런!데!
계획이 끝나고는 실행에 옮길 때는 계획 대로 하지 않거나 계획을 깨뜨리는 것을 즐기는 모드로 전환이 된다.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잔뜩 타이트하게 세워놓고는 널부러져 버린다. 이런 패턴을 몇 번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지만, 나의 기대치, 욕심과 실행력 사이에 벌어진 간격은 좀처럼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계획을 세우고 작심삼일이라도 무한반복한 것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제까지 여러 작은 성공과 성취들이 있었다고 자신을 격려하며 힘을 얻어 내 기대치와 실행력 사이에 있었던 장애물들을 하나씩 제거해 보기로 했다.
일단, 작은 시도를 하는 것이다.
하루에 하고 싶은, 해야 할 일들을 매번 꼬박꼬박 적었지만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육체를 이탈하려는 멘탈을 붙들고 협상을 한다.
'스트레칭? 1분만 하자구! 어때? 쉽지?'
오케이~! 그리고 스트레칭을 해 본다. 어느새 내 욕심에 이끌려 3분이 넘어간다.
'여기서 스탑!! 가볍게 1분만 하자구~ 모든걸 가벼운 마음으로 맛만 본다는 마음으로!'
더 하고 싶은 걸 참고 멈췄다.
내 일과 리스트에는 번역도 있다. 모르는 단어, 표현들에 압도되어 한동안 책에 먼지가 쌓였다.
'자, 하루에 한문장 어때? 할 수 있겠지?'
오케이~! 용기를 내어 시작했다. 한 문장이 금새 3문장을 넘어가고 있다. '어, 재미있는데 왜 이걸 진작 하지 못했을까?'
'여기서 스탑~! 매일 조금씩만 하자니까?! 매일 맛만 보자구 맛만!!'
결국 스트레칭도 번역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멈췄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아, 그동안 내가 완벽주의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했구나. 이제는 작은 시도, 작은 성취를 해 보자.
1분만, 한 문장만, 한 페이지만 해 보는 거야.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해보면 재미있잖아.
즐기면서 조금씩 그렇게 해보자.
이렇게 내 욕심과 실행 사이의 장애물을, 내 방을 치우듯 치우게 되어 기쁘고 감격스럽다.
물론 이게 시작이고 앞으로 더 많은 장애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마음으로 기대감으로 끝까지 여정을 가보고 싶다.